2025년 APEC 정상회의라는 대형 이벤트를 거치며 우리 경주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도심 골목길의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대형 관광버스가 다시 도심을 채우고, 황리단길을 넘어 황촌과 금리단길, 봉황로 상점가 곳곳에서 다양한 언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경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16만 2,363명으로, 2년 전인 2024년 동기 대비 무려 34.1%나 급증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인 축제 효과를 넘어, 경주의 위상이 APEC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달라졌음을 방증하는 명백한 지표이며 긍정적인 메시지이다.이러한 수치보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관광객 국적의 다변화와 관광 동선의 확장일 것이다. 중국에 편중되었던 과거와 달리 대만, 미국, 일본, 유럽, 동남아 등 전 세계 각지에서 10% 미만의 고른 비율로 경주를 찾고 있다. 특정 국가의 경제 상황이나 외교적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관광지’로 체질이 개선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이다. 아울러 황리단길에 집중됐던 이들의 발길이 실속형 관광 트렌드와 맞물려 도심권 골목상권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점은 그간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시름하던 지역 상인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올리브영과 같은 대기업이 도심에 팝업스토어를 여는 등 시장의 자본이 경주를 새롭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지금의 화려한 성적표는 결승선이 아닌 새로운 출발선 봐야 할 것이다.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주말마다 발생하는 극심한 주차난과 교통 체증, 생활 소음 등 숱한 일상의 불편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민들은 침체된 지역 경제가 살아나길 바라는 간절함과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를 묵묵히 감내하고 있다. 상인들 역시 번역 앱을 더듬거리며 외국인 손님과 소통하려 애쓰는 등 자생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처럼 지역 공동체를 살리겠다는 시민들의 성숙한 포용력과 희생정신이야말로 지금의 관광 호황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밑거름 일 것이다.이제는 행정이 시민들의 노력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느끼는 불편 사항의 50% 이상이 여전히 ‘언어 소통’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뼈아픈 지점이다. 안내 표지판 등 하드웨어는 과거보다 개선되었을지 모르나, 대중교통 노선 안내나 영세 식당의 메뉴판 등 관광객의 피부에 직접 와닿는 소프트웨어 측면의 다국어 인프라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이다.경주시 행정은 그저 늘어난 관광객 숫자에 환호하는 홍보성 치적 알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될것이며, 시민과 상인들의 자발적인 환대 의식에 세밀하고 촘촘한 정책적 지원을 더해야 할 것이다. 골목상권 영세 상인들을 위한 표준화된 다국어 메뉴판 보급, 스마트폰을 활용한 실시간 다국어 관광 안내 시스템 구축, 그리고 시민들의 정주권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교통·환경 대책 등 체계적인 수용 태세 개선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듯, 지금이 바로 경주의 미래 100년을 좌우할 골든타임이다. APEC이 쏘아 올린 희망의 신호탄을 일회성 불꽃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시민들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행정의 디테일한 기획력이 온전히 하나로 뭉쳐야 한다. 세계인이 걷고 싶은 도시, 시민의 일상이 행복한 관광도시 경주를 향한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