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 유치 이후 21년, 경주시민의 인내심이 결국 임계점을 돌파했다. 최근 경주시 원전범시민대책위원회를 비롯해 경주시의회 원전특별위원회, 동경주권 3개 읍면 발전협의회 등 3개 단체가 연대하여 발표한 공동 성명서는 정부와 원자력계를 향한 단순한 불만 표출이 아니다. 이는 34년간 핵폐기물을 껴안고 살아온 지역민의 생존을 건 마지막 최후통첩이다.가장 뼈아픈 대목은 2016년 고준위 핵폐기물 반출 약속의 철저한 파기다. 경주는 국내 5개 원전 지역 중 유일하게 건식저장시설(캐니스터, 맥스터)과 습식저장시설을 모두 떠안고 있는 십자가를 졌다. 2005년 방폐장 유치 당시 정부는 "2016년까지 건식저장시설 내 고준위 폐기물을 외부로 완벽히 반출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그러나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폐기물은 그 자리에 방치되어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머리에 이고 살아온 시민들의 심리적 불안과 피해는 철저히 외면당했다.설상가상으로 2025년에 제정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은 경주시민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 원자력계와 환경단체조차 해당 시설을 `임시저장` 혹은 `중간저장` 시설로 보며 이견을 보였으나, 특별법에 `부지 내 저장시설 운영`이라는 독소조항이 담기며 정부는 합법적 면죄부를 얻었다. 습식저장시설만 보유한 타 지역과의 형평성, 천문학적인 비용 발생이라는 궁색한 변명 속에 경주가 34년간 감내해 온 건식저장시설 보상 요구는 철저히 묵살되었다. `선(先) 법안 제정, 후(後) 세부 논의`라는 미봉책에 끌려다니다 덜컥 법이 통과되며 보상의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이는 사실상 경주를 고준위 폐기물의 영구 처분장으로 고착화하려는 기만행위다.중·저준위 방폐물 반입수수료 문제 역시 정부와 공공기관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방폐장 운영 60년간 매년 1만 3,333드럼 반입을 기준으로, 1드럼당 63만 7,500원씩 연간 85억 원, 총 5,100억 원의 지원금을 약속했던 장밋빛 청사진은 온데간데없다. 2011년부터 15년간 실제 경주시에 지급된 수수료는 고작 273억 원(예상액 대비 20%)에 불과하다. 1,087억 원이라는 막대한 지역 발전 예산이 허공으로 증발한 것이다.그 이면에는 한국수력원자력(발생사업자)과 한국원자력환경공단(코라드·최종처분사업자)의 볼썽사나운 `핑퐁 게임`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한수원 부지 내에는 2005년 이전 발생한 약 10만 드럼의 방폐물이 쌓여 있다. 원자력계 안팎에서는 과거 군부 정권 시절 부실하게 관리된 이 폐기물들이 적법한 기준에 따라 분류·보관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공공연한 비밀로 지적한다. 코라드의 엄격한 인수 기준을 맞추려면 막대한 선별 비용과 재포장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기에, 두 기관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반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두 거대 기관의 밥그릇 싸움과 직무유기 속에 그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고스란히 경주시민의 몫이 되었다. 더 이상 이런 농락에 경주가 놀아날 수는 없다.이제 얄팍한 `드럼당 수수료 계산`이라는 꼼수는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정부는 당초 약속했던 총량 5,100억 원을 기준으로 매년 85억 원씩 정액 형태로 지급하여 기만당한 지역 예산을 정상화해야 한다. 또한 34년이라는 끔찍한 시간 동안 고준위 폐기물을 안고 살아온 시민들의 짓밟힌 심리적 피해에 대한 명확한 사과와, 2016년 미반출 약속 파기에 따른 실효성 있고 책임 있는 소급 보상안을 법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그동안 중앙정부의 논리에 밀려 강력한 제동을 걸지 못한 경주시와 제8·9대 경주시의회의 안일한 대처도 맹성해야 한다. 언제까지 중앙정부의 핑계에 고개 끄덕이며 회의록에나 남을 헛된 요구만 반복할 것인가. 이번 성명서는 지역 사회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신호다.이번이 정부를 향해 던지는 마지막 경고다. 더 이상 정치권의 공허한 외침이나 탁상공론으로는 단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이제는 25만 경주시민이 직접 단일대오로 뭉쳐 강력한 실력 행사에 나서야 할 때다. 정부의 명확한 책임 규명과 정당한 정액 보상 조치가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타협 없는 연대로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그것이 34년간 묵묵히 희생해 온 우리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고, 부당한 짐을 떠안게 될 미래 세대를 위해 완수해야 할 마지막 책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