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판도라의 항아리 –애물과 보물-<2005년 11월 3일, 경주> 가장 적합한 방사성폐기물처분장(약칭 ‘방폐장’, 속칭 ‘핵폐기장’) 부지의 조건은, 화강암 같은 튼튼한 암반에 지하수가 흐르지 않고, 바닷물이 침투하지 않고,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곳이다. 왜냐하면 중·저준위방폐물의 방사능이 완전히 사라지는 300년 동안은 방폐장이 안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가 정한 ‘중·저준위방폐장’ 제척기준에 보면, 동굴처분의 경우 기반암 또는 지층에 균열이 많고 석회암이 존재하는 곳은 제외하며, 표층수가 가능한 없는 곳이어야 하며, 지하수 유동 및 유속이 작아야 하며, 활성단층 지역이나 그와 같은 지역에 인접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정부는 2004년에 방폐장 부지로 적합한 지역을 물색하여 20군데로 압축한 다음 다시 11개소로 축소한 후, 방폐장 부지 선정을 위한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경주, 군산, 영덕, 포항 4개 도시에서 유치를 신청했다. 경주와 군산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고, 마침내 경주가 90%라는 경이적인 찬성률로 ‘중·저준위방폐장’ 부지로 최종 확정됐다. 19년간 표류하던 국책사업인 방폐장의 부지 선정이 엄청난 인센티브 공세와 주민투표라는 묘수를 통해 전격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세계 유일의 문무대왕 수중릉에서 불과 500미터 떨어진 곳에 1차로 10만 드럼을 저장하는 동굴식 처분장이 해수면 130미터 아래에 건설되고, 계속해서 총 80만 드럼 저장 규모의 처분장이 추가 건설될 예정이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일본의 동북부 해안을 덮친 대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원자력발전소의 냉각시스템에 전력공급이 중단되어 결국 3기의 원전에서 동시다발 노심용융(meltdown)이 일어났다. 체르노빌 사고에 이은 21세기 초반부터 발생한 최악의 대규모 방사능 누출 사고였다.  후쿠시마원전은 리히터 규모 7.9까지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는데 이번 지진의 규모는 9.0이었기 때문에 견딜 수 없었고, 그 이후 14∼15m의 쓰나미로 인해 1∼4호기가 정지하였다. 설상가상으로 15m의 쓰나미로 인한 비상발전기 고장으로 인해 전력 공급이 중단되어 긴급노심냉각장치(ECCS) 작동이 불가능하여 노심 온도가 12일에 1200도까지 상승하였고, 방사능 물질의 공기 중 확산이 시작되었다. 연로냉각장치 중단으로 인해 물이 증발하여 공기 중에 핵연료가 누출되었고, 과열되어 핵연료가 손상되었다. 핵연료에 있는 질코늄이 1,200도를 넘으면 반응해 수소를 내놓는데, 이 수소가 모임에 따라 12일 1호기, 14일 3호기에서 수소폭발을 일으켜 격납용기를 손상시켜서 방사능 유출을 시작했다. 4호기의 경우, 수소폭발이 발생하였으나 냉온정지 상태로 들어감에 따라 최악의 상황을 피하게 되었다. 그나마 5·6호기가 폭발하지 않은 것은, 디젤발전기가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냉각수가 필요 없는 공랭식이었다. 그래서 천만다행으로 냉각기능을 유지해 폭발하지 않았다.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의 최고 단계인 7등급의 이 사고로 인해, 방사능이 주변 토양과 대기로 확산되었고, 인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방사성 세슘과 요오드를 비롯한 고농도 오염수가 바다에도 유출되었다. 그리고 후쿠시마현 내에서 여러 종류의 플루토늄이 검출되었다. 또한 후쿠시마원전에서 30Km 이상 떨어진 지역의 토양과 식물에서 방사성 물질인 스트론튬이 검출되었다. 1만 년에 한 번 일어난다던 노심용융이 체르노빌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 지 불과 25년도 안 돼 그것도 동시다발로 발생한 것이다. 작가는 후쿠시마원전 사태를 보며 ‘필연적 우연’이란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자연과학에서 오랫동안 대립해온 이론 가운데 확률론(우연)과 결정론(필연)이 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우연과 필연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이 두 가지를 하나의 조화로운 통합적 구도 안에서 융화하려는 시도가 제기돼왔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필연적 우연과 우연적 필연’이다. 어떤 현상의 구현은 오직 확률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확률은 엄격한 결정론적 방정식을 따른다. 바꿔 말하면, 세상만사는 본질적으로 우연적인데 그 확률은 필연적이란 뜻이다. 실제로 교통사고의 경우 한 개인이 보기에는 우연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필연이다. 그렇다고 보면, 원자력발전소의 노심용융 사고나 방사능 누출 사고도 ‘필연적 우연’인 것이다.  로또를 향한 거센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거의 전 국민적인 열풍이다. 당첨 확률은 8,145,060분의 1이다. 속된말로 교통사고나 벼락으로 사망할 확률보다 더 낮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복권에 목을 매는 이유는 뭘까. 자연과학 법칙으로 풀어보자. 통계적 확률에 근거하는 ‘엔트로피 증대법칙’에 따르면 우주는 질서와 에너지가 끊임없이 흐트러지고 분산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질서 있는 방향으로 갈 확률보다 흐트러지는 방향으로 갈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아주 기막힌 ‘전기(轉機)’가 숨어 있다. 질서 있는 방향으로 갈 확률이 매우 낮기는 하지만 완전히 0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확률이 0이 아니라는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그 상태가 실현된다는 사실을 뜻한다. ‘압도적인 무질서로의 확률’과 마찬가지로 비록 ‘미미한 질서로의 확률’이지만 이 또한 명백한 수학적 진실이다. 인생이 두 극단 사이의 폭넓은 확률 스펙트럼에서 운행된다고 볼 때, 대중들의 로또 현상 또한 이런 수학적 진실 게임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과학적 이론을 거꾸로 ‘방사능 사고’에 적용해보자. 노심용융 사고나 방사능 대량 누출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0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그 사고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불과 3, 40년 남짓 사이에 세 번이나 일어난 노심용융 사고의 역사가 이를 고스란히 증명해주고 있다. 인간들은 흔히 불가항력의 재앙이 발생하면 천재지변이었다며 체념과 함께 책임 회피를 해버린다. 마찬가지로 후쿠시마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도쿄전력은 ‘대지진과 예상을 초월한 해일’ 때문이었다며 천재(天災)라고 강변했다. 작가의 판단은 다르다. 이는 원전이나 핵폐기장 자체가 갖고 있는 치명적 위험과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감추려는 어쭙잖은 변명에 불과하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이 만든 기계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모든 기계나 물리적·화학적 장치들에 반드시 사고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이 만든 모든 기계는 반드시 고장이 난다. 특히 원자력발전소의 고장은 바로 사고로 이어지며 그 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가져온다. 더구나 고농도의 방사능 누출 사고는 오랜 기간을 걸쳐 인류에게 고통을 주고 지구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 작가의 주관이 아니라, 앞에서 거론했듯이 원전 사고의 역사들이 이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작가는 수시로 되뇐다. 방사능 누출 사고는 과연 천재(天災)인가, 인재(人災)인가. ‘필연적 우연’에 의한 사고인가, 인간이 지닌 한계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어느 기자의 지적처럼, 신이 아닌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원전이나 핵폐기장 자체가 갖고 있는 치명적 위험을 감추려고 천재나 인재로 둔갑시키는가. 작가는 이러한 의문들을 내내 가슴에 품고, 항상 염두에 두면서 이 작품을 쓸 것이다. 이제 소설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려고 한다. 이 작품은 팩션(Faction)소설이다. 하지만 흥미와 재미만 좇아 역사적 사실을 변형·왜곡한 후 거기에 소설적 상상력을 마음껏 덧붙여 쓴 여느 팩션소설들과는 다르다.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비율에서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작가는 진실과 양심을 좇아 소설을 써야 한다는 확고한 소신을 항상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의 내용들은 거의 대부분 실제 사건, 실제 상황이며, 등장인물 또한 실재 인물이 많다. 당사자들에 대한 명예 훼손의 우려도 있고, 해당 지역·기관·기구·단체 등의 반발도 염려되고, 고소·고발 등의 법적인 다툼도 피하기 위해 스토리 구성과 등장인물 설정 등에서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했다. 그러나 사실성을 살리기 위해 허구적 요소를 가능한 한 줄이려고 노력했음을 밝힌다. <제2의 판도라의 항아리> 마리 퀴리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사진건판을 검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이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방출되는 성질을 ‘방사능(Radioactivity)’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렇게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오감으로도 전혀 느낄 수 없는 것이 방사능이다. 즉 방사능은 만질 수도, 냄새도, 맛도, 색깔도, 소리도 없다. 그래서 ‘침묵의 천사’이면서 ‘침묵의 살인자’이다. 흔히 방사능을 ‘양날의 칼’이라고 한다. 방사능이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학, 과학, 공학 등 온갖 분야에서 ‘꿈의 의료 진단·치료장치’로, ‘첨단 과학·공학기기’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침묵의 살인 병기’이기도 하다. 한꺼번에 수십, 수천만 명을 살상할 수 있는 ‘원자폭탄’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작가는 월성원자력발전소 인근에 살며 원전지역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들로 인해 불안감을 느끼고 갈등을 겪으면서 원자력은 신이 인류에게 내려준 ‘제2의 판도라의 항아리’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다. 원자력발전소의 형상이 마치 초대형 항아리를 엎어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판도라의 상자’로 많이 알려졌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힘을 기울여 창조한 ‘최초의 여자 판도라’는 아름다운 재앙이고, 남자가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매력 덩어리였다. 판도라가 받은 것은 본래 항아리였으나, 이후 이야기가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상자로 번역되어 현재는 이것이 그대로 쓰이고 있다. 아무튼 ‘판도라의 항아리’는 인류의 온갖 불행과 희망의 시작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원자력발전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서, 원전은 ‘독(毒)이 든 보물 항아리’인 셈이고, 핵폐기장은 핵 재처리 여부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보물도 될 수 있는 대형 항아리인 셈이다.<19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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