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여유 예산을 한데 모아 신속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재정 비상금 통장’ 도입에 나섰다. 정식 명칭은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이며, 이를 위한 조례 시행규칙안을 입법예고하고 오는 29일까지 시민 의견을 접수 중이다. 이번 제도는 시민들의 눈에 직접 보이지 않더라도, 행정의 재정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지금까지는 일반회계, 특별회계, 각종 기금 간 예산을 유연하게 옮길 수 없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한 회계에서 예산이 남아도 다른 곳에선 부족해도 활용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일부 사업은 예산을 남기고도 중단되는 반면, 긴급 상황에서는 재원이 없어 신속한 대응이 어려웠다. 이런 비효율과 제도적 불합리를 해소하기 위한 장치가 바로 이번 통합기금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여유 자금은 통합기금에 예탁되고, 재정이 필요한 부서는 절차에 따라 자금을 활용할 수 있다. 단순한 융통이 아니라, 예탁 부서에는 정기예금 수준의 이자를 제공해 재정 운용에 유인도 부여했다. 상환 지연 시 연체이자를 부과해 책임 있는 자금 사용을 유도하는 등 체계적인 운용 기반도 마련됐다.이러한 제도는 단순히 잔액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재난 대응이나 긴급 복지, 돌발적인 정책 추진 등 시의적절한 행정 대응의 토대가 된다. 특히 대규모 사업이 중첩되고 재정 압박이 큰 시기일수록, 기민하고 유연한 예산 운용 체계는 더욱 중요하다.
시민 입장에서는 직접 체감되기 어려운 제도일 수 있지만, 그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정의 대응력을 키우고, 한정된 재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궁극적으로는 시민 복지와 도시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경주시는 이번 시행규칙을 계기로 재정 운용의 효율성과 신뢰도를 한층 높여야 할 것이다. 제도의 도입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실제 운영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책임성이다. 정책의 성패는 ‘운용의 성실성’에 달려있다. 경주시는 시민과의 신뢰 속에서 이 제도를 잘 정착시켜,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재정 장치’의 모범 사례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