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가위바위보’로 우승팀 결정? 경주시장배 축구대회
폭염 핑계...스포츠 정신 실종"황당한 대회 운영에 시민 혈세가 왠말"이란 빈축
경주시가 오랜 세월 쌓아온 ‘유소년 스포츠 도시’의 자부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지난 5일 열린 제32회 경주시장배 시민축구대회 중장년부 결승전에서 우승팀이 ‘가위바위보’로 결정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스포츠 본연의 가치와 정신을 무시한 비상식적 결정으로, 시민과 축구인들 사이에 거센 비판을 일으키고 있다.
문제의 결승전은 경주시 축구협회가 주관하고 경주시가 예산 500만 원을 투입해 지원한 공식 대회다. 해마다 시민참여를 통한 생활체육 진흥을 목적으로 열리는 이 대회는, 경주시의 대표적인 시민 체육행사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정작 가장 중요한 결승전이 축구 경기장이 아닌 ‘운에 맡긴 게임’으로 마무리됐다. 경주시축구협회는 “연일 이어진 폭염과 경기장 사정으로 인해 선수들의 건강을 고려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양 팀의 합의 하에 가위바위보로 결정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축구계는 이러한 해명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폭염은 경기 일정 조정을 통해 피할 수 있었고, 경기 규정상 기상이변 등으로 경기를 치르기 어렵다면 연기하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경기 운영을 책임져야 할 경주시축구협회가 선수 보호를 명분으로기본 원칙을 저버린 셈이다.
현장에 있었던 시민들은 “이게 말이 되냐”며 허탈한 반응을 보였다. 축구 동호인 A씨는 “경기장에서 가위바위보 하는 모습을 보고 농담인 줄 알았다”며
“이런 대회에 출전한 시간이 아깝다”고 비판했다.
또한 “향후 체육 예산의 투명성과 대회 운영 방식을 전면 점검해야 한다”고목소리를 높였다. 이같은 내용은 지역사회에서도 회자 되며 웃음거리로 확산되는 등 경주시의 체육 행정에 타격을 입혔다.
이번 사태가 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대회에 경주시의 공식 예산이 투입됐다는 점이다. 단순 사설 대회가 아니라 시의 이름을 건 공공 체육행사인 만큼, 시민 세금으로 운영된 대회에서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결과를 결정한 것은 공공의 책임과도 직결된다.
시 관계자조차 이번 사태에 대해 “사전에 이런 방식으로 마무리 됐다는 보고는 없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더불어 오는 8월 예정된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축구대회’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대회는 20년 넘게 경주시가 전국 유소년 축구팀을 대상으로 주최해온 국내 최대 규모의 유소년 축구대회다. 수천 명의 선수가 경주를 찾는 이 대회는 지역 숙박, 식음료, 관광 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왔다.
하지만 이번 ‘가위바위보 사건’으로 인해 ‘축구의 도시 경주’라는 상징성에 금이 가고 있다. 유소년 선수들과 학부모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경주시의 대회 운영에 대한 신뢰도에도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시민 김 모 씨는 “화랑대기까지 이런식으로 운영된다면 전국적으로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며 “경주라는 도시 이름이 걸린 만큼 기본 원칙과 운영 매뉴얼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경주시축구협회는 이번 사태에 대한 공식 사과와 함께 향후 재발 방지를위한 개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결승전과 같은 주요경기에 대한 대응 매뉴얼, 비상상황 발생 시 대체 방안, 시민 의견 수렴 절차 등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스포츠는 단순한 승부가 아니다.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인간적인 성장을 이루고, 시민이 함께 즐기고 소통하는 장이다. ‘가위바위보’라는 황당한 방식으로 결승을 결정한 이번 사건은 경주시가 앞으로 어떤 스포츠 정신을 시민과 청소년에게 보여줄 것인지, 그 진정성을 묻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경주시는 시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서라도 이번 사태를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재발 방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유소년 스포츠의 미래를 이야기하기 전에, 기본적인 ‘경기 운영의 상식’부터 되짚어봐야 할 때다.
이종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