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의 본질은 시민의 행복과 안녕을 도모하는 데 있다. 아무리 국가적인 당위성이 있고 지역 발전을 위해 시급한 정책이라 할지라도, 그 정책을 수용하고 살아가는 주인은 결국 시민이다. 최근 경주시가 추진 중인 `경주 클린에너지센터(통합바이오가스화 시설)` 건립 사업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행정이 여전히 `목적의 정당성`만을 앞세워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민주 행정의 기본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일일 300톤 규모의 유기성 폐자원을 처리하는 ‘경주클린에너지센터’는 경주시의 설명대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당장 올해(2026년)부터 시행되는 `바이오가스법`에 따라 의무 생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매년 수십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과징금을 시민의 혈세로 감당해야 한다. 또한, 오랜 세월 악취와 민원의 진원지였던 기존 노후 처리시설을 전면 지하화된 첨단 시설로 대체하고 국·도비를 확보해 시 재정 부담을 더는 것도 행정관청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이다.그러나 정책의 당위성이 행정의 일방통행을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본지의 `주민 0명 깜깜이 설명회` 보도 이후 마지못해 열린 천북면과 용강동 주민설명회에서 터져 나온 시민들의 성토는, 그동안 경주시가 지역 사회와 얼마나 괴리된 밀실 행정을 펼쳐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미 각종 자원순환시설과 기피시설로 일상이 무너진 천북면 주민들에게 사전 소통조차 없이 또다시 대형 폐기물 처리시설을 안기려 한 것은, 지역 주민의 희생을 당연시해 온 행정의 편의주의적 사고가 도를 넘었음을 증명한다.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용강동 주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2만 4천 여 주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 악취 제어 가능성, 차량 통행으로 인한 환경 피해 등 피부에 와닿는 문제들에 대해 시는 서류상 데이터와 장밋빛 청사진만을 제시했다. 일방적인 홍보관 설명회로 절차적 요건만 채우려 했던 행정의 하자가 결국 주민들의 불신을 자초하고, 사업 추진의 가장 큰 장애물을 스스로 만든 셈이다.진정한 민주 행정은 정책 수립 단계부터 주민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이견을 좁혀 나가는 합의의 과정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절차적 파행과 깊은 불신 속에서도 우리 시민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결사반대로 일관하기보다 "서류가 아닌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며 타 지자체의 선진지 검증을 제안했고, 향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 주민이 직접 감시하고 참여하는 `주민 거버넌스` 구축을 요구했다. 이는 행정과 시민이 대립각을 세우는 대신, 공공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시민들이 먼저 제시한 것이다.이제 공은 다시 경주시로 넘어왔다. 시는 당면한 과징금 방어나 국비 확보라는 조급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며, 그 방향은 반드시 시민과 함께 발을 맞추어야 한다. 시민들이 제안한 선진지 비교 견학을 형식적인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닌, 의구심을 완전히 해소하는 투명한 정보 공개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피해가 우려되는 인근 및 주변 영향권 지역 주민들을 위한 실질적인 행정적·재정적 보상 책을 명확히 하고, 사업의 전 과정에 주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상시 거버넌스 체계를 즉각 구축해야 한다.주민의 눈물을 담보로 밀어붙인 정책은 결국 더 큰 사회적 갈등 비용과 불행을 낳는다는 사실이다. 경주 클린에너지센터 사업은 탄소중립 선도 도시 경주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분수령이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경주시가 `절차적 통보`라는 구태를 벗어던지고, 주민의 의견이 정책의 중심이 되어 시민과 행정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소통 행정`의 원년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