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 현 소설가약 력·본명: 정현걸(鄭賢傑)·1960년 4월 7일, 경북 경주 감포에서 태어남·대구상업고등학교 졸업·대구은행 8년간 재직·한국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계간「참여문학」에 단편소설 <행복에너지>, <허행(虛行)>, <독부(毒夫) 권하는 사회> 등 발표로 작품 활동. ‘생태’ 장편팩션소설「판도라의 항아리 -애물과 보물-」상재·제14회 한국참여문학상(소설) 수상E-mail: hide-god@hanmail.net hidegod2@naver.com 판도라의 항아리 –애물과 보물-이 소설은 경주방폐장을 소재로 한 최초의 장편팩션소설이다. 국책사업인 ‘중·저준위방폐장’과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에 얽힌 생생한 진실을 담고 있고. 또한 경주방폐장의 실상을 낱낱이 해부하여 문제점을 제시하고, 궁극적으로 방폐장의 안전성을 확보하려는 작가의 간절한 희망이 담긴 생태문학이다. 이 작품은 팩션(Faction)소설이다. 하지만 흥미와 재미만 좇아 역사적 사실을 변형·왜곡한 후 거기에 소설적 상상력을 마음껏 덧붙여 쓴 여느 팩션소설들과는 다르다. 이 소설의 내용들은 거의 대부분 실제 사건, 실제 상황이며, 등장인물 또한 실재 인물이 많다. 그래서 <실록 경주방폐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민수용성의 장단점, 정부의 밀어붙이기 식 국책사업 추진의 문제점, 방폐장의 안전성 논란에 대한 해결책을 비롯한 향후 과제 등을 진솔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앞으로 최대 국책과제가 될 ‘고준위핵폐기물 최종처분저장시설’ , 현재 월성에 존재하고 있는 건식저장 시설 확충 등 최근 경주는 또다시 술렁이고 있다.오래전 작가는 원자력은 신이 인류에게 내려준 ‘제2의 판도라의 항아리’라고 밝히고 있다. ‘판도라의 항아리’는 인류의 온갖 불행과 희망의 시작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판도라가 살짝 열었다가 급히 닫은 항아리에 남은 희망은 ‘어떤 불행한 일을 겪어도 희망만은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비관적인 관점에서는 ‘불행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바라는 헛된 희망’이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제2의 판도라의 항아리’가 희망의 시작과 불행의 시작 중에 어느 쪽이 되느냐는 온전히 우리 국민 모두의 몫이고, 우리들의 슬기로운 대처와 올바른 선택에 달려 있다고 작가는 호소하고 있다.이 소설을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재 조명하는가? 중저준위 유치당시의 각종 인센티브 등의 보물덩어리 쟁탈전에 뛰어들면서 ‘요란과 분쟁’의 도시로 돌변한다. 시대상을 반영 하고 있다.최근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지진으로 인해 이제 경주시민들은 원전을 이해 해야 한다.본질적인 이해와 본질에 가리워진 내면을 봐야 할 것이다.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경주를 다시 조명 하고 앞으로 닥칠 미래를 준비 해야 할 것이다.프롤로그1 최초의 방사성 원소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고 1903년 노벨 물리학상, 1911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마리 퀴리’ 여사. 흔히 ‘퀴리 부인’으로 불리고 알려진 그녀는 여성으로서 세계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했고, 그것도 두 번이나 수상했다. 초중학교 교과서에서 아직도 만나볼 수 있고, 각 가정마다 세계위인전집 속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퀴리 부인. 그녀의 결혼 전 이름은 ‘마리아 스쿼도프스카(Maria Skłodowska)’이다. 작가가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정말 감명 깊게 읽었던 <퀴리 부인>이란 글에 나온 일화를 일부 소개하며 이 소설을 시작한다. 퀴리 부인의 초등학교 시절에 그녀의 조국 폴란드는 러시아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폴란드는 분할 지배하에 있었는데, 바르샤바는 러시아령이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제정 러시아의 압정(壓政)을 겪으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학교 수업은 모두 러시아어로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폴란드 학생들은 폴란드어로 공부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실에서 폴란드 역사를 배우고 있을 때였습니다. ‘찌링, 찌링, 찌링!’ 교실에 달아 놓은 벨이 세 번 울렸습니다. 러시아 관리가 왔다는 신호입니다.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학교를 감시하기 위해 가끔 러시아 관리를 학교에 보냈습니다. 학생들은 재빨리 폴란드 역사책을 감추고, 바느질 도구를 책상 위에 내놓았습니다. 잠시 후, 러시아 관리 한 명이 거드름을 피우며 교실에 나타났습니다. 그 관리는 학생들을 한 번 둘러보고 나서 선생님에게 명령했습니다. “내가 질문하는 것에 대답하도록 한 학생을 골라 주시오.” 퀴리 부인은 ‘하느님, 부디 제가 뽑히지 않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퀴리 부인을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이 학급에서 러시아어를 가장 잘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던 러시아 관리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질문했습니다. “그럼, 지금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이 누구신가?” 퀴리 부인은 폴란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 황제가 폴란드를 다스리고 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을 안 하면 큰일이 벌어지고 말 것입니다. 퀴리 부인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대답했습니다.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 폐하입니다.” 러시아 관리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뚜벅뚜벅 걸어 나갔습니다. 그 순간 퀴리 부인은 선생님에게 달려가 와락 안기며 외쳤습니다. “선생님, 저는 폴란드 사람이에요.” 퀴리 부인은 설움이 복받쳐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습니다. 선생님의 눈에서도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퀴리 부인은 폴란드 사람들이 러시아의 노예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항상 마음 아팠습니다. 이처럼 부인의 조국에 대한 사랑은 대단히 높았습니다. 나는 <퀴리 부인>에 대한 일화를 읽으며 그 당시 느꼈던 감동을 4, 50년이 지난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너무나 애달팠고, 감동적이었다. 어쩌면 일제의 압제에 시달렸던 우리와 폴란드 국민들의 처지가 비슷해서 그 일화가 더욱 감명 깊었는지도 몰랐다. 1995년 4월 20일, 한 부부의 유해가 엄숙한 의식 속에 프랑스 파리 팡테옹 신전으로 이장되었다. 팡테옹은 프랑스의 국가적 위인들만이 묻힐 수 있는 국립묘지이다. 아내 마리 퀴리는 남편의 업적이 아니라 자신의 업적만으로 팡테옹에 묻힌 최초의 여성이었다. 이처럼 마리 퀴리에게 ‘최초’라는 말은 마치 당연한 수식어처럼 붙는다. 앞에서 소개한 것 외에도 소르본대학 최초의 여성 물리학 박사, 소르본대학 최초의 여성 교수, ‘방사능(放射能;radioactivity)’이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과학자 등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이렇게 방사능 발견·연구로 인류사에 크나큰 업적과 발자취를 남겨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위인 반열에 오른, 그 퀴리 부인이 방사능 연구로 인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분의 사인이 백혈병과 악성 빈혈이란 것은 알았을지라도 그 원인이 누적된 방사능 피폭 때문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작가도 최근에야 이 같은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작가가 특히 주목하는 점은, 방사능 연구자로서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사망한 최초의 여성이란 것이다. 참으로 삶의 모순이자,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777년∼779년, 경주>: 삼국사기 신라본기 혜공왕 13년(777년) 봄 3월에 서울(지금의 경주)에 지진이 일어났다. 여름 4월에 또 지진이 일어났다. 상대등 양상이 왕에게 글을 올려 시국의 정치를 극론(極論)하였다. 겨울 10월에 이찬 주원을 시중으로 삼았다. (十三年 春三月 京都地震 夏四月 又震 上大等良相上疏 極論時政 冬十月 伊周元爲侍中) 혜공왕 15년(779년) 봄 3월에 서울에 지진이 일어나, 백성들의 집이 무너지고 죽은 사람이 100여 명이었다. 금성(太白)이 달에 들어갔다. 백좌법회를 열었다. (十五年 春三月 京都地震 壞民屋 死者百餘人 太白入月 設百座法會) 779년,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일어나 1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지진의 규모는 6.5∼6.7에 달했던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1643년 7월 24일, 울산>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따르면, 경주와 인접한 울산 동쪽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땅에 구멍이 났고 이후 물이 솟아 모래가 높게 쌓인 것으로 기술돼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 지진의 강도를 7.0에서 9.0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밖에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지진에 관한 기록이 많다. 한국 지진학계에서는 한반도 내의 큰 지진발생 주기를 약 200∼300년으로 보고 있고, 세계 지진학계에서는 동일 장소에 큰 지진발생 주기를 100∼1000년으로 아주 넓게 보고 있다. 양대 정사(正史)인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를 보면 11세기 무렵, 경주는 불국사 석가탑이 지진으로 붕괴되어 두 번이나 중수할 정도로 빈번한 지진으로 공포에 떨었다고 되어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도 경주 일대에서 일어난 지진이나 화산에 의한 피해 기록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그렇다면 왜 유독 경주에 지진이 잦았을까? 국내 지질학계에 의하면, 불국사가 자리 잡은 토함산을 포함한 경주―울산을 잇는 ‘울산단층’은 지진 활동이 활발한 국내 대표적인 ‘활성단층’ 지대로 꼽힌다. 현재 경주 일대가 지진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예측한 학자도 있다. 원자력발전소가 6기가 있고,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하 방폐장)이 건설 중인 경주 일대는 활성단층인 읍천단층이 인접해 있고, 양산단층도 지나가고 있어 부지 지정 당시에도 지질 안전성 논란에 휩싸였다. 국내 원전은 규모 6.5, 최대 지반가속도 0.2g 기준으로 내진 설계가 되어 있어 7.0 이상의 대형 지진에는 큰 피해가 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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