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안강읍 두류공단에 조성하려던 산업폐기물 매립장 사업이 또다시 사업자의 자진 철회로 중단됐다. 그러나 해당 사업이 철회된 배경에 도시계획 자문 내용의 사전 유출 정황이 드러나면서, 지역사회는 "행정의 신뢰가 무너졌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주시와 주민들에 따르면, 폐기물 처리업체 ㈜이리는 지난 4월 경주시에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제안하며 안강읍 두류리 일대 8만7,715㎡ 부지에 약 226만㎥ 규모의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접수했다. 시는 각 부서 검토와 도시계획위원회 자문을 거쳐, 6월 9일 ‘수용 불가’ 결정을 공식 통보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업체는 통보 당일 돌연 입안 제안서를 자진 철회했고, 이에 따라 행정절차는 종결 처리됐다.
문제는 ‘수용 불가’ 결정이 업체에 사전에 알려졌다는 점이다. 경주시 도시계획과는 자문회의 비공개 원칙에도 불구하고, 용역사 직원과의 협의 과정에서 자문 내용이 구두로 전달된 사실을 인정했다. 용역사는 해당 사업자와 동일한 이해당사자라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와 특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주시 도시계획 조례에 따르면,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는 비공개가 원칙이며, 회의록 공개도 심의 종료 후 30일이 지나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공개 자문회의 결과가 사업자 측에 미리 전달돼, 업체는 지적 사항을 사전에 파악하고 철회→보완→재접수라는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게 됐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 주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안강읍 두류 산폐장 반대투쟁위원회는 “이번 자진 철회는 본질적으로 재추진을 위한 시간 벌기용 `간 보기`에 불과하다”며 “경주시는 더 이상 이 사업을 검토 대상에 올려선 안 된다. 다음 제안부터는 즉각 불수용 처리를 약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리는 2021년에도 같은 부지에서 유사한 사업을 추진했으나 주민 반대와 행정 문제로 철회했고, 이후 사명을 변경한 뒤 2023년 재도전에 나섰다. 경주시의 부적정 판단이 내려졌지만 경북도 행정심판위원회가 이를 뒤집으면서 재추진이 가능해진 상태였다.
경주시의회 이강희 의원은 “회의 당일 수많은 주민들이 폭염 속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며 결과를 확인하려 했지만, 시는 조례를 이유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같은 내용을 용역사엔 구두로 전달했다는 건 이해당사자에 대한 명백한 특혜”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행정이 특정 사업자의 손을 들어준 결과가 됐고, 다수 시민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을 초래했다”며 “책임 있는 행정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사업자 측은 “기존 허가구역 중복 문제 등을 보완해 재접수를 준비 중”이라는 입장을 밝혀, 사업 재추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향후 경주시의 대응과 행정 신뢰 회복 여부가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