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종대왕과 성덕대왕신종한글을 창제를 주도한 세종대왕(재위기간:1418-1450) 덕분에 우리가 한글을 쓰고 있어서 고마울 따름이지만 18난 4녀를 둔 것도 놀랍다. 한글날이 가까워오니 세종대왕을 기리는 뜻에서 경주에 얽힌 이야기 하나를 살펴보자.아마 관리였거나 혹은 암행어사, 아니면 실용주의를 지향하는 양반이었는지 확실치 않는 누군가가 사용하지도 않고 수풀에 쓰러진 채로 뒹굴고 있던 선덕대왕신종을 녹여 농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다. 아이들이 종 위에서 뛰놀고 소가 뿔을 갈고 있더라는 시(詩)에서 묘사된 것처럼 신종은 당시 형편없는 신세가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를 알게 된 어느 선비가 다시 상소를 올렸다.“성군이신 세종대왕이시여, 매사 판단이 바르시고 명석하신 임금께서 어찌하여 성덕대왕신종을 녹이시라는 명령을 내리시는지 이는 불가하옵니다. 이 몸을 죽이시더라도 신종을 녹이지 말고 보전하여 주십시오. 혜안을 가지시고 통촉하여 주십시오.” 상소를 본 세종대왕은 그 선비에게 지필묵(紙筆墨)을 상으로 주면서 “경상도 봉덕사의 큰 종과 유후사와 연복사의 큰 종을 헐지 말게 하라”는 전지를 내렸다.(세종실록 24편.5월 3일. 1424년)이렇게 하여 성덕대왕 신종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 뒤 몇 곳을 옮겨 다니다가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존치되어 있다. 만일 어느 선비가 그 때 상소를 올리지 않았다면 신종은 필시 농기구가 되었을 것이다. 또 세종대왕이 종을 보전하라는 전지를 내리지 않았어도 오늘날 성덕대왕신종은 우리 앞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선비가 올린 상소문처럼 세종대왕의 혜안이 놀랍다.한글날을 맞아 세종대왕의 고마움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