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핵심 성장 동력으로 추진 중인 소형모듈원자로(SMR)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예산 축소와 사업 일정 지연 속에 SMR 산업 전반에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시는 최근 양성자 가속기 연구단지와 문무과학연구단지 등 지역 내 과학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SMR 산업단지 유치를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지난 6월 초에는 국내 SMR 관련 기업들과 간담회를 열고 3D프린팅 제작지원센터 구축 등 실질적인 실행 방안도 논의했다. 이와 함께 경주시의회 제291회 임시회에서는 관련 예산이 승인되며 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는 듯했다.
하지만 정치권과 학계 일부에서는 경주시의 이 같은 움직임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에 기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 차원의 SMR 정책이 아직 명확한 방향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지방정부의 단독 추진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4일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기존의 탈원전 기조를 일부 수정해 ‘감원전’ 중심으로 방향을 선회했지만, SMR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로드맵은 여전히 미비하다. 지난해 SMR 연구개발 예산이 90% 가까이 삭감된 데 이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 중인 ‘민관합작 선진원자로 수출기반 구축사업’도 2029년 말로 완료 시점이 연기되며 일정 전반이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한국형 SMR 개발을 주도하는 한국원자력연구원조차 아직 실증 단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국제 원자력 시장의 경쟁 심화, 기술 규제, 인력 유출 등의 구조적 문제까지 겹쳐, SMR 산업의 상용화 가능성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시는 여전히 시민들에게 낙관적인 기대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역 차원의 산업 유치와 고용 창출을 위한 전략적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중앙정부와의 정책 연계가 없는 독자 행보는 현실성 부족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지역 산업 전문가들은 “지금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시점”이라며,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 예산 확보, 기술 검증 등 단계적인 전략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SMR 국가산단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주시가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보조를 맞추는 한편, 시민과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수렴해 점진적이고 정교한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SMR 국가산업단지가 지역의 미래 먹거리로 성장하기 위해선, 지금이야말로 냉정한 현실 진단과 유연한 정책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