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비 40%는 조합·설계자 몫… ‘조직적 수수’ 구조도 적발감리자도 돌아가며 배정… 조합이 실질적 시장 지배
경주지역 건축사조합의 조직적 ‘갑질’ 행위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6일, 경주건축사업협동조합(이하 ‘조합’)이 감리비를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시장에서 기준가격과 최소감리비를 강제 설정하고, 감리비 중 일부를 설계자와 조합에 나누어 지급하도록 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2억 6천2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조합은 경주 지역 건축사 86명 중 77명이 소속된 지역 독점적 사업자단체로, 2018년 창립 이후 구성사업자들이 실제 계약을 체결하는 감리비를 일괄적으로 정한 ‘기준가격’에 맞추도록 유도해왔다.
이들은 감리비 산정 방식까지 정교하게 시스템화했다. 건축공사비에 감리 요율을 곱해 금액을 계산하도록 한 감리비 산정 프로그램을 조합 홈페이지에 탑재해 ‘표준 감리비’를 자동 생성했고, 이를 조합이 발급하는 ‘감리자 선정 통보서’에 명시해 사실상 강제 적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공정위 조사 결과, 조합은 2018년 10월 임시총회에서 감리비 기준가격을 도입한 이후 4차례에 걸쳐 금액을 변경하면서 홈페이지에 게시했고, 감리비가 과도하게 낮아지는 것을 막겠다며 최소 감리비를 초기 300만원에서 2023년에는 400만원으로 인상했다.
이로 인해 조합 소속 건축사들은 건축주와 별도 협상이 없는 한, 사전 산출된 기준금액 그대로 감리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공정위는 이 같은 행위가 감리 시장의 자유로운 가격 경쟁을 심각하게 제한했다고 지적했다.
감리비 기준 일괄 책정… ‘자율 가격 결정’ 원칙 정면 위반감리비 40%는 설계자·조합 몫… 건축주의 비용 부담 가중
문제는 가격 결정뿐만이 아니었다. 조합은 감리업무를 수행하는 사업자가 받는 감리비 중 20%를 설계자에게, 나머지 20%를 조합 운영비 명목으로 납부하도록 규정했다. 이른바 ‘교체감리’(설계자와 감리자가 다른 경우)에서 설계자가 수익을 챙기도록 한 구조로, 감리업무와 무관한 비용이 건축주에게 전가되도록 한 셈이다.
조합이 이처럼 감리비의 40%를 자체 분배하면서 감리자는 실제 업무 대비 적은 보수를 받고, 건축주는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조합은 구성사업자 간 감리 기회를 균등하게 배분한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회차제’라는 감리자 선정 방식을 도입했다. 회차별로 1인씩 돌아가며 감리를 맡도록 하고, 이미 감리를 수행한 사업자는 다음 회차가 오기 전까지 배제하는 방식이다.
회차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으면, 남은 구성사업자 8명에게 운영보조비 110만원을 지급한 후 강제 종료하고 다음 회차를 시작하는 식으로 운영됐다. 공정위는 이러한 방식이 구성사업자의 자유로운 영업 활동을 제한한 명백한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경주건축사업조합의 행위는 가격 경쟁을 차단하고 감리시장 질서를 왜곡한 전형적인 담합 구조”라며 “지역 전문직 단체가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음에도 사익을 앞세워 자율 경쟁을 가로막은 사례”라고 밝혔다.
이번 제재는 감리시장에서 건축주의 비용 부담을 줄이고, 감리서비스의 품질 향상을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시민사회에서도 반응이 잇따랐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감리비를 담합하고 회차제로 감리자를 지정하는 구조는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며 “타 지역 조합의 유사 운영방식도 전면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지방 중소도시의 전문직 협동조합이 갖는 폐쇄성과 비경쟁적 구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감리비 40%를 강제 배분하고, 감리기회까지 순번제로 통제하는 방식은 자율시장 원칙을 철저히 외면한 운영 방식으로, 타 지역의 건축사 단체에도 경종을 울릴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향후 의료, 법률, 건축 등 전문직 단체 전반에 대한 법 위반 행위를 상시 감시할 것”이라며 “유사 행위 적발 시 원칙에 따라 엄중히 제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