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아마도 지천명(知天命) 고개를 넘을 즈음인가? 사계절을 맞이하기에 앞서, 먼저 꽃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바람마저 녹여버린다는 매화, 봄의 전령사 복수초, 3월의 매혹적인 진달래, 4월 벚꽃의 향연, 5월의 모란과 작약, 6월의 심장 장미, 곧 강렬한 여름 7월의 꽃!5월의 품격 모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선덕여왕(재위 632~647년)이다. 흔히 훌륭한 리더를 일컬어 통찰력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교육학적 관점에서 통찰력이란 문제해결을 위한 ‘감각’이나 ‘느낌’의 ‘직관적 사고’와 ‘강력한 증거’인 ‘분석적 사고’의 상호보완적인 고차적 인지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신라 제27대 군주 선덕여왕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여왕으로, 통찰력이 뛰어난 인물로 전해진다. 선덕여왕 직위 얼마 후 당 태종 이세민이 모란의 씨앗과 그림을 선물로 보냈다. 여왕은 그림을 보자마자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며, 벌이나 나비가 없는 모습에서 향기가 없음을 간파했다. 훗날 씨앗을 심자 꽃은 화려했지만 실제로 향기가 나지 않았다.당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모란은 중국에서 꽃 중의 왕으로, 부귀와 영화, 제왕의 미덕을 상징한다. 이는 우호 외교의 일환이자 문명과 권력의 상징을 전달함으로써 당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고, 동시에 선덕여왕의 지혜와 통찰력을 시험하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역사적 배경 상, 당시 선덕여왕은 미혹에 흔들리지 않는 불혹(不惑)에 이른 시기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르네상스 전인적 예술가 3대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통찰력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첫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과학, 철학, 해부학, 공학, 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탁월한 통찰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인간의 신체 구조를 깊이 이해하고자 약 30여 구의 시신을 해부하고 수백 장의 해부학 드로잉을 남겼다. 대표작인 ‘모나리자’의 미소와 ‘최후의 만찬’의 구도는 감정, 구조, 상징을 아우르는 직관과 분석의 결정체로 평가된다.
둘째, 인간의 내면과 육체, 정신의 본질을 꿰뚫어 본 조형의 시인이라 불리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다. 그는 조각, 회화, 건축가로, 피렌체의 ‘다비드상’에서 신과 인간의 존재 의미를 통찰하였다.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조각 ‘피에타’에서는 근육, 힘줄, 골격 구조에 대한 정밀한 인체 묘사가 구현되었으며,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천지창조’는 그의 통찰이 시각화된 르네상스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
셋째, 라파엘로 산치오는 르네상스 이상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조화의 천재다. 그는 ‘아테네 학당’에서 지적 질서, 인문주의, 철학적 조화를 한 장면에 압축하였다. 학당의 중앙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치하고, 플라톤의 얼굴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헤라클레이토스의 얼굴에는 미켈란젤로를 투영시켜 존경을 표현하였다. 또한,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디오게네스, 아르키메데스 등 철학, 수학, 과학, 예술이 한 공간에 공존하도록 구성함으로써 통합적 통찰력을 발휘하였다.
지난 가정의 달, 풍요로움의 잔향이 가시지 않은 체 5월의 장미와 눈을 맞추고, 6월 괴테의 장미를 가슴에 안아본다. “복된 천사들이 장미를 뿌리며 파우스트의 영혼을 들어올린다.” 꽃이 주는 행복은 사계절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통찰의 역사요, 통찰의 문화요, 한 영혼의 고백이 되었다. 글 권영자(신경주대 교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