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건축사업협동조합이 사실상 감리비를 담합하고 감리자를 순번제로 강제 배분해 온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감리비는 건축주와 감리자 간 자율적으로 정해야 할 계약 요소지만, 조합은 일괄적으로 기준가격을 설정하고 최소 금액을 정한 뒤, 감리계약 금액의 40%를 설계자와 조합에 수수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2억6천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조합에는 경주지역 건축사사무소의 90%에 가까운 77명이 가입돼 있어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건축공사비에 감리 요율을 곱하는 산정 프로그램을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이를 기준으로 감리비가 자동 계산되도록 시스템화했다. 또 감리자가 설계자와 다를 경우에는 20%를 설계자에게, 20%는 조합 운영비로 떼가도록 규정했다. 업무의 대가와 무관한 금전이 오가는 구조는 명백한 불공정행위이며, 건축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조합은 감리자 배정마저 회차제라는 이름으로 나눠 운영했다. 조합원이 감리 기회를 한 번씩 돌아가며 맡도록 강제하고, 회차가 끝나지 않으면 운영보조비 110만원을 지급해 조기에 회차를 넘기기도 했다. 이는 사업자의 자유로운 영업을 침해하는 명백한 위법 행위이며, 자율 경쟁이라는 시장 원칙을 정면으로 훼손한 사례다.이번 사건은 단순한 감리비 담합이 아니다. 지역 건축사 단체가 자신들만의 ‘폐쇄적 규칙’을 만들어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소비자 이익을 침해해 온 구조적 문제다. 전문성과 공공성을 내세우며 면죄부를 받아왔던 전문직 단체들이 이제는 철저히 법적·윤리적 기준에 따라 평가받아야 한다.   공정위는 이번 사례를 계기로 의료, 법률, 건축 등 전문직 단체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를 강화하고, 위법사항이 확인되면 예외 없는 제재를 가해야 한다. 감리비 담합은 단지 계약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의 공정성과 소비자의 신뢰, 나아가 지역사회 전체의 경제 질서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지역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경쟁을 가로막는 구조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전문가 단체라면 더욱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으로 지역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경주에서 촉발된 이번 사건이 전국 전문직 단체 개혁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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