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체코에서 수주한 26조원 규모의 신규 원전 본계약 체결이 프랑스 전력공사(EDF)의 가처분 신청 인용으로 하루 전 전격 중단됐다.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이 내린 결정은, 한국의 첫 유럽 원전 수출이라는 쾌거를 눈앞에 두고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외교적, 제도적 대응의 취약성이 드러난 셈이다.   체코 정부와 발주처, 한수원 모두 입찰 절차의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체코 경쟁보호청(UOHS)도 이미 EDF의 이의를 기각한 바 있으며, 한수원이 제안한 기술력과 경제성은 경쟁사보다 우수하다는 점에서 최종 낙찰자에 이의가 없다는 것이 체코 측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럼에도 EDF는 법적 수단을 동원해 계약 자체를 가로막았다.   법원의 판단은 “계약 체결 시, 본안소송에서 승소해도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한다”는 논리지만, 이는 곧 국가 간 전략사업의 법적 리스크를 상시 내포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 원전 수출을 국가 산업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한 지연 이상의 전략적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이번 사건은 ‘팀코리아’의 대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정부 대표단까지 현지에 파견된 상황에서 계약이 무산됐다는 것은 국가 차원의 조율과 전략적 사전 준비 부족을 시사한다. 원전 수출은 단순한 기업 수주가 아니라 기술·외교·정치·법률이 복합적으로 얽힌 총력전이다.   한수원이 체코공과대학, 체코 전력연구소 등과 기술협력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온 노력은 고무적이다. 또한 미국의 차세대 SMR 개발사인 오클로(Oklo)와 손잡고 4세대 고속로 시장 진입을 노리는 행보도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눈앞의 ‘첫 유럽 원전 수출’이라는 상징성과 실질적 성과가 지연된다면, 그 여파는 단순한 일정 조정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정부와 한수원은 이제 법적 대응과 함께 외교적 설득, 국제 여론전까지 포함하는 다층적 전략을 가동해야 한다. 체코 정부의 신뢰를 유지하는 동시에, EDF의 반복적 법적 공격에 대응할 제도적 안전장치를 국제 입찰 규정 안에서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향후 한국의 다른 해외 원전 수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시장과 정치가 얽힌 초국가적 프로젝트에서는 ‘기술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략 외교, 정책 연계, 현지 제도 이해도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한수원은 이번 체코 사태를 단순한 변수로 치부해서는 안 되며, 제도 보완과 국가 차원의 포괄적 지원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이제는 기술이 아닌 제도와 외교의 힘으로 계약을 지켜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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