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주시 다회용컵 정책, 실행은커녕 선언에 그쳐경주시는 ‘친환경 도시’라는 이름 아래 다회용컵 사용 정책을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대부분의 부서에서 일회용컵 사용이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선언만 요란한 ‘보여주기 행정’에 시민들의 신뢰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말’이 아닌 ‘실천’이 중요하다는 말은 공공기관일수록 더 무겁게 새겨야 한다. 경주시는 올해 4월부터 모든 본청 부서에 다회용컵을 비치하고, 경주지역자활센터를 통해 대여와 세척까지 맡기는 체계를 마련했다고 대외적으로 밝혔다. 예산 5천만 원을 들여 추진한 ‘1회용컵 저감 정책’은 10월로 예정된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친환경 도시’라는 이미지를 앞세우기 위한 포석이었는가? 하지만 시행 두 달이 지난 현재, 실제 시청 내 상당수 부서에서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1회용컵을 사용하고 있다.방문객을 응대하는 창구, 회의 테이블, 심지어 환경 관련 부서에서도 1회용컵이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 현실은 어떤 명분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다회용컵이 비치되었어도 ‘불편하다’, ‘귀찮다’는 이유로 외면받고 있다면, 이 정책은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시작했다’는 것에만 의미를 두는 전시행정은 시민들에게 실망만 안길 뿐이다.경주시가 APEC을 앞두고 ‘친환경’을 강조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정책 방향으로도 의미 있는 시도다. 그러나 이는 시민에게 먼저 책임을 묻기 전에, 공무원들 스스로가 실천의 본보기를 보여야만 진정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특히 일회용컵 사용은 개인의 작은 습관에서 비롯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공직사회 내부부터 강한 의지를 갖고 일관된 실천을 이어가지 않으면 결코 시민을 설득할 수 없다.경주시의 일회용컵 저감정책은 좋은 시작이었다. 그러나 선언에만 그치고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5천만 원의 예산은 허공에 뿌린 셈이다. 자활센터와의 협업 역시 단순한 형식에 머무르면, 지속 가능한 정책이 아니라 일시적 이벤트로 끝나버릴 수밖에 없다.경주시가 진정한 ‘친환경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내부 공직자들의 일상적 실천과 문화적 전환이 필수다. 다회용컵 하나를 사용하는 습관이 시민 인식의 변화를 이끌 수 있고, 그 작지만 확고한 실천이 도시 전체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지금이라도 각 부서 책임자들이 솔선수범하여 1회용컵 사용을 근절하고, 실질적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친환경은 정책이 아니라 ‘생활’이다. 말을 멈추고, 행동하라. 지금 경주시에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닌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