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안강읍의 전통적인 토마토 주산지에 대규모 최첨단 유리온실 조성계획이 가시화되며 지역 농업계가 격랑에 휘말렸다. 사업 주체는 농업회사법인 A사. 이들은 20ha(6만 평)에 달하는 유리온실 단지를 조성해 토마토와 오이를 생산하고 이를 수출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최첨단”, “고용 창출”, “수출 주도”라는 말이 오히려 지역 농민들의 불안과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실제로 이 사업은 안강 지역의 농업 기반을 뿌리째부터 흔들고 있다. 토마토 과잉공급 문제로 시름하는 농가들은 기업농이 밀어붙이는 대규모 생산으로 인해 시장 질서가 무너질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일부 농민들은 농지를 지분 형태로 투자하는 방식으로 사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자칫 실패할 경우 막대한 부채를 떠안을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농민들의 분노는 행정기관의 태도에 향하고 있다. 농지 취득 과정에서 여러 차례 부결됐던 농업회사법인 A사의 계획은, 북경주행정복지센터장과 관련 공무원의 ‘압박성 행정’에 힘입어 결국 승인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농지심의위원회 위원인 지역 이장들을 상대로 수차례 심의를 요청했고, 결국 통과됐다. 농민들은 “지역 농업을 보호해야 할 행정이 오히려 외부 기업의 편을 들고 있다”며 깊은 배신감을 드러냈다. 행정기관은 지역 농민들의 생계를 보장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서 드러난 태도는 지나치게 기업 쪽에 기운 모습이다. 황훈 북경주행정복지센터장은 “고령화된 안강 지역 농업도 경쟁력을 갖춘 스마트팜으로 전환돼야 한다”며 “농업도 무한경쟁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 기반 농업의 도입 자체는 부정할 수 없지만, 이 말 속엔 지역 농민들의 오랜 경험과 공동체적 기반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인식이 담겨 있다.   농업회사법인 A사는 이미 과거 상주에서도 유사한 사업을 추진하며 갈등을 빚은 전력이 있다. 당시에도 수백억 원 규모의 융자와 보조금이 집중되면서 소규모 농가들의 몫은 줄어들었고, ‘공급포화’의 폐해가 농민들에게 전가됐다. 이번 안강읍 노당리 유리온실 사업 역시, 약 300~400억원 규모의 시설자금을 100% 융자로 조달하고, 지열 냉·난방 시설에 대해서는 80% 보조금이 투입될 계획이다. 결국 공공재원을 활용한 ‘민간 수익 사업’에 가까운 셈이다.   농민단체는 “행정은 지금이라도 중립적 자세로 사업의 실효성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A사 측은 “품종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 농가에 피해가 없다”고 해명하며, “대부분 수출용이고 고용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농민들의 반응은 단호하다. “말뿐인 약속에 또 다시 현혹될 순 없다”는 것이다.   기자는 현장에서 수차례 들은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수출이 된다 안 된다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쌓아온 지역 농업 생태계와 유통 구조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진짜 두렵다”는 한 중소 토마토 농가의 말은 이 사안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스마트팜은 분명 미래 농업의 방향 중 하나다. 그러나 그 전환이 지역 농업의 붕괴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외부 기업과 행정이 손잡고 지역 농민을 소외시키는 방식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경주시가 진정 ‘지속 가능한 농정’을 원한다면, 그 시작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농민의 삶을 바라보는 균형감 있는 시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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