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상징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차(Tea)’다. 빅벤이나 셰익스피어와 함께 자연스레 떠올리는 이미지이자, 단순한 기호를 넘어 300년에 걸쳐 영국 사회와 문화를 형성해온 역사 그 자체다.
17세기, 포르투갈의 캐서린 공주가 영국 왕실에 차를 소개하면서 차는 처음으로 귀족 사회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차는 값비싼 수입품으로, 상류층의 세련된 생활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왕실에서 시작된 작은 습관이 훗날 전 국민의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라 예상한 이는 없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은 영국 차 문화의 전환점이었다. 해상 무역의 발달과 대량 생산 체계는 차를 더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했고, 그 결과 귀족의 전유물이던 차는 도시 노동자와 서민들까지 즐기는 일상적 음료로 자리 잡았다. 차는 산업화 시대 영국인의 피로를 달래는 위안이자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이 무렵 차를 중심으로 한 사교 문화도 싹텄다.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애프터눈 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브렉퍼스트 티’는 단순한 음용을 넘어 하나의 생활 의례로 발전했다. 찻잔을 사이에 둔 대화와 만남은 영국 사회의 인간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다.
차의 대중화를 앞당긴 또 하나의 요소는 ‘설탕’이었다. 홍차에 설탕을 더하면서 특유의 떫은맛이 부드러워졌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맛으로 변모했다. 설탕과 홍차의 만남은 곧 영국인의 생활 리듬을 바꾸었고, 차를 ‘국민 음료’로 격상시켰다.
오늘날 영국에서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체, 예절과 품격을 드러내는 문화적 장치이자, 영국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찻잔 속에 담긴 향기는 곧 300년 세월이 빚어낸 역사와 사색의 향기이기도 하다. 당신의 하루에도 그 깊은 향기를 담은 한 잔의 차를 초대해보길 바란다. 글 박영숙<경주 차문화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