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을 맞아 전국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경주시 역시 신라대종 앞에서 시민과 독립유공자 후손, 보훈단체 등이 함께한 경축식을 통해 선열들의 희생을 기리고, 대한민국의 자주와 평화의 가치를 되새겼다. 하지만 광복 80주년을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날로만 여긴다면, 이는 역사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경주의 땅 곳곳에 남아 있는 항일투쟁의 흔적들은 오늘의 우리에게 분명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선열들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고, 미래 세대에 무엇을 전할 것인가.”   경주는 흔히 ‘신라 천년의 고도’, ‘문화유산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주의 또 다른 얼굴은 항일투쟁의 현장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이 지역에서도 의병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일제의 무단통치 속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태어나고 싸웠다. 특히 1919년 3월 15일 경주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경주의 항일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이다.   당시 경산과 대구에서 번져온 3·1운동의 불길은 경주 도동리 교회로 이어졌다. 태극기를 제작하며 시위를 준비하던 이들은 일제 경찰의 사전 검거로 좌절을 겪었으나, 이틀 뒤인 3월 15일 다시 봉황대 인근 장터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애국청년들이 주도한 이 만세 시위는 비록 수많은 체포와 징역형으로 이어졌지만, 경주의 민중이 독립 의지와 자주 정신을 분명히 드러낸 역사적 장면이었다.   경주의 독립운동은 단발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의사 박상진은 대한광복회를 조직해 무장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군자금 조달과 무력 투쟁에 앞장서다 옥중에서 순국했다. 한송 김봉규, 정수기, 김종철 등 수많은 독립지사들은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만주와 국내를 오가며 항일운동을 이어갔다. 경주의 교회와 천도교 교당, 그리고 최부잣집 같은 명문가의 지원은 항일운동의 숨은 기반이 되었으며, 그 흔적은 오늘날 공적비와 기념비, 그리고 교회와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는 이 같은 항일투쟁의 역사를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경주의 독립운동은 단순한 지방사(地方史)가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독립을 향한 뜨거운 염원이 지역 곳곳에서 어떻게 피어올랐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다. 문화유산의 도시라는 경주의 위상은, 사실 항일투쟁의 정신과 결합될 때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일제강점기의 폭압과는 다르다. 그러나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선열들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양극화와 분열, 국제적 갈등 속에서 대한민국은 다시금 ‘자주’와 ‘평화’, ‘협력’의 가치를 되새겨야 한다. 주낙영 경주시장이 경축사에서 밝힌 것처럼, 오는 10월 열리는 APEC 정상회의는 경주가 세계에 ‘역사와 평화의 도시’로 거듭날 기회다. 이는 단순한 국제회의가 아니라, 경주의 항일투쟁이 남긴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세계와 공유하는 자리여야 한다.   또한 경주 곳곳의 독립운동 사적지는 더 이상 일부 연구자와 보훈단체만의 기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봉황대 인근의 만세 발상지, 경주제일교회, 효현교 일대의 대한광복회 첫 거사 현장,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기념비와 묘소는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자 역사문화 탐방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교과서 속 활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땅을 밟고 숨결을 느끼며 선열들의 희생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광복 80주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선열들의 정신을 기리는 일은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 사회가 정의와 평화, 협력의 가치를 실천하는 데 있다. 경주의 항일투쟁 역사는 그 길을 비춰주는 등불이다. 우리는 이 역사를 더 깊이 배우고, 더 널리 알리며, 미래 세대에게 온전히 전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광 복 80주년을 맞은 오늘, 우리가 경주에서 되새겨야 할 진정한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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