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공무직 노동조합 제13대 집행부 선거가 시작 전부터 잡음에 휘말렸다. 회계감사 후보 추천 과정에서 일부 추천 서명이 임의로 작성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해당 회계감사 후보 1명에 대해 자격을 박탈했지만, 정작 서명을 임의 작성한 당사자는 현행 규정상 제재할 수 없어 후보 자격을 유지했다. 이번 조치는 조합원들 사이에서 “공정성이 무너졌다”는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동조합 선거는 단순히 집행부를 구성하는 절차가 아니다. 조합원의 권리를 대변할 대표를 뽑는 민주적 과정이며, 투명성과 공정성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그러나 추천 서명 임의 작성이라는 초보적 부정행위가 발생했고, 그 책임이 일부만 제한적으로 적용된 것은 제도적 허점과 관리 부실을 동시에 드러낸다. 추천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면, 그것을 주도한 당사자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현행 규정의 빈틈은 이를 비켜가게 만들었다. 그 결과 “규정대로 했으니 문제없다”는 행정적 답변과 “선거가 이미 공정성을 잃었다”는 조합원들의 반발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단순한 ‘서명 위조’ 문제가 아니다. 조합 내부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추천 서명이 임의로 작성됐다는 사실 자체가 조합원 개개인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며, 이러한 방식이 묵인될 경우 향후 선거마다 비슷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조합원들의 참여와 신뢰가 약화된다면 노동조합이 존재할 이유조차 흔들릴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규정 미비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회계감사 후보의 부정만 확인해 자격을 박탈했지만, 서명을 임의로 작성한 추천자는 제재할 수 없다고 했다. 규정상 직접적인 처벌 조항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제도가 미비하다 해서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해야 할 선거 관리가 사실상 형식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건은 “규정대로 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안일한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제도 개선이다. 노동조합은 스스로 민주적 정당성을 유지해야 하는 조직이다. 그 출발점이 바로 선거다. 추천 과정부터 투표와 개표, 그리고 사후 관리까지, 명확하고 강력한 규정이 있어야 부정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 임의 서명이나 대리 서명 같은 기본적 부정행위에 대한 명시적 제재 조항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선거관리위원회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조합원 스스로도 공정한 선거에 대한 감시와 참여 의식을 가져야 한다.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힘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며, 선거는 그 힘을 확인하는 장치다. 일부 부정행위가 묵인되거나 관행처럼 자리 잡는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조합원 전체다. 조합원 개개인이 “내 한 표가 존중받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노동조합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경주시 공무직 노조 선거를 둘러싼 이번 논란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 이는 조합 민주주의의 경고음이자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신호다. 선거관리위원회와 노조 집행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규정의 빈틈을 보완하고, 다시는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조합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노동조합의 기본 원칙을 지키는 길이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조직이다.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민주주의의 원칙부터 지켜야 한다. 그 시작이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다. 이번 사건이 뼈아픈 교훈으로 남아, 앞으로 경주시 공무직 노동조합이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세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