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공사가 체코 원전 수주를 위해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장기 계약이 공개되면서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단순히 기업 간 이해관계가 아니라, 향후 수십 년간 한국 원전 산업의 자율성과 수출 전략을 제약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번 합의가 과연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섣부른 성과주의의 결과인지 묻고 있다.   합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한국은 원전 1기 수출 시마다 웨스팅하우스에 약 9천억 원 규모의 물품·용역을 조달하고, 별도로 2천4백억 원에 달하는 기술 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 합산하면 1조 원을 훌쩍 넘는 액수다. 원전 건설 단가의 7~8%에 달하는 거대한 비용이 외국 기업으로 빠져나가게 되는 구조다. 특히 수출 건수가 늘어날수록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세계 원전 시장 확대를 목표로 한 우리의 전략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기술 주권의 침해다. 합의서에 따르면 소형모듈원전(SMR)과 같은 차세대 독자 기술조차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검증을 통과해야 수출이 가능하다. 이는 우리의 기술을 외국 기업에 먼저 공개해야 한다는 뜻이며, 사실상 기술 자율권을 포기한 것과 다르지 않다. 지난 수십 년간 축적해온 연구개발 성과와 산업 경쟁력이 족쇄에 묶인 셈이다.   수출 시장 제한도 치명적이다. 북미와 유럽연합, 일본, 우크라이나 등 주요 시장은 웨스팅하우스의 독점 구역으로 설정되어 한국은 발을 들일 수 없다. 이들 지역은 우리가 전략적으로 노려온 핵심 시장이었다. 결국 남미나 동남아, 일부 중동으로 활동 무대가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 원전 산업의 글로벌 확장 전략이 근본적으로 차단된 것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굴욕 계약”, “노예 협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실도 뒤늦게 진상 조사를 지시했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절차 점검이 아니다. 계약 체결 과정의 배경, 협상 당시의 판단, 그리고 무엇보다 국익이 제대로 고려됐는지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   일부에서는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한미 원자력 협정상 미국의 동의 없이 원전 수출이 어렵고, 당시 웨스팅하우스의 소송으로 체코 원전 입찰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합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급박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승소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무시한 채, 정부가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협상을 서둘렀다면 이는 심각한 과오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굴욕 논란을 넘어 한국 원전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시험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계약의 구체적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회와 전문가의 검증을 받는 것이다. 둘째, 원천 기술과 지식재산권 범위를 명확히 해 우리의 독자 기술이 부당하게 제약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사후 수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웨스팅하우스와의 합작법인(JV) 설립 등 새로운 협력 구조를 통해 북미·유럽 시장에도 공동 진출할 길을 모색하는 방안이 거론될 수 있다.   체코 원전 수출 성과는 외교적, 산업적으로 의미가 크다. 그러나 그 대가로 우리 산업의 기술 주권과 수출 전략을 50년 동안 묶어버린다면, 이는 결코 자랑할 만한 성과가 될 수 없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원전 산업의 장기 전략을 재정립하고, 자주적 기술력과 투명한 협상 과정을 보장해야 한다. 지금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해명이 아니라, 국익을 지키겠다는 확실한 비전과 책임 있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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