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가 지난달 30일 경주 화랑마을에서 고려인 정착 방안 대토론회를 연 것은 시의적절하다. “지역과 함께하는 고려인 정착, 상생과 공존의 해법”이라는 주제처럼, 고려인 동포가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이번 토론회에는 고려인 동포를 비롯해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지역 주민 등 200여 명이 함께했다. 정지윤 명지대 교수와 김춘수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각각 ‘고려인 동포 삶의 질 향상 과제’, ‘고려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발표했고, 학계·의회·행정·민간 전문가들이 지정토론을 이어갔다. 논의는 단순한 원론적 차원을 넘어 언어교육, 자녀교육, 주거·고용 안정, 지역 주민과의 소통 확대 등 구체적 정책 과제까지 제안하며 현실적 해법을 모색했다.무엇보다 경북의 특수한 상황이 이번 논의를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경북의 외국인 주민은 11만 8,274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고려인 동포는 6,401명이다. 특히 경주에만 5,838명, 전체의 91%가 거주해 사실상 고려인 정착의 중심지가 됐다. 경주라는 특정 지역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교육, 주거, 문화적 갈등과 같은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열린 이번 공개 토론회는 고려인 지원을 주제로 한 첫 공식 논의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
현장에서 고려인 동포들이 직접 생활 속 어려움을 호소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정책이 현장 체감과 맞닿아야 함을 환기시킨다. 언어 장벽으로 인한 의사소통 문제, 자녀들의 교육 격차, 불안정한 고용 구조와 주거 문제 등은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 고려인 동포는 단순한 외국인이 아니라 역사적 뿌리를 공유하는 동포라는 점에서 지원 논의는 더욱 무게를 가진다.
경상북도는 이미 2023년 외국인공동체과 신설, 전국 최초 ‘이민정책기본계획’ 수립, 광역형 비자제도 도입, K-드림 외국인지원센터 운영 등 체계적인 정책 기반을 마련해왔다. 어린이집 보육료와 의료비 지원, 기숙사 환경 개선, 한국어 교육, 문화·체육 교류까지 외국인 주민의 정착 전 과정에 걸친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번 토론회는 그러한 정책을 고려인 정착 현실과 맞추어 보완할 기회였다.
이상수 경북 지방시대정책국장은 “고려인 동포는 단순한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와 뿌리를 같이하는 소중한 동포”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행정의 방향을 상징한다. 고려인은 법적 신분상 외국인이지만, 정체성과 역사적 기원을 공유하는 독특한 집단이다. 따라서 그들의 정착 지원은 단순한 외국인 정책을 넘어선, 역사적 책임이자 공동체적 과제라 할 수 있다.
앞으로 경북이 풀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첫째, 언어·교육 지원을 체계화해 다음 세대가 사회에 원활히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고용·주거 안정은 동포들의 삶의 질을 지탱하는 핵심이다. 셋째, 지역 주민과의 교류와 이해 증진이 없다면 사회적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행정적 지원과 함께 지역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인식하는 과정이 병행돼야 한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로서 다양한 문화를 품어온 도시다. 오늘날 경주는 또 다른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다. 고려인 동포와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공동체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면, 경북은 다문화 사회의 모범을 제시하는 선도 지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말뿐인 포용이 아닌 실질적 상생이 이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