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제1차 경주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 2정의로운 전환 없는 계획, 사회적 갈등 불가피개발·생태계 충돌 속 경주의 지속가능한 길은?
경주시는 2018년을 기준으로 2030년과 2034년의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제시했지만, 감축의 속도와 경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특히 수송 부문은 배출 증가세가 예상되면서도 동시에 최대 감축을 맡는 구조적 긴장을 안고 있다. 연차별 세부 과제와 재정·정책도구의 연계, 중간점검 시 보정 장치, 시민 참여와 공개성 강화 등은 아직 미흡하다. 이번 기사는 경주시 탄소중립 계획의 형식적 성과와 구조적 한계를 짚고, 실질적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과제를 분석한다. <편집자 주>
경주시가 수립한 탄소중립 기본계획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국가적 목표에 맞춰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세부 이행 전략을 뜯어보면, 현실적 한계와 모순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에너지 전환, 예산 확보, 사회적 합의, 생태계 보전 등 핵심 영역에서 미흡한 점이 뚜렷해 ‘보완과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원전 확대·재생에너지 후퇴, 에너지 전환의 모순
경주시 기본계획은 국가 기본계획과 마찬가지로 원전 의존도를 높이고 재생에너지 목표치를 축소했다. 경주가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위치한 ‘원전 도시’라는 점은 분명한 특수성이다.
하지만 원전 확대는 탄소중립이라는 본래 취지를 훼손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제적으로 원전은 안전성, 비용,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 등에서 재생에너지보다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일부 회원국이 원전의 친환경 분류에 동의했지만, 독일 등은 오히려 원전을 폐쇄하며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경주시가 원전에 치우친 구조를 유지한다면 장기적으로 ‘탈탄소’가 아니라 ‘원전 의존’이라는 또 다른 취약성을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경주는 태양광·풍력 등 분산형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농촌지역과 해안지역의 입지, 관광자원과 연계한 친환경 에너지 모델은 경주가 선도할 수 있는 분야다. 그러나 현재 계획은 이러한 자산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예산 부족과 성과평가 부재, 실행력에 의문
기후위기 대응은 ‘2차 세계대전 수준의 동원’을 요구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통된 목소리다. 그러나 경주시의 탄소중립 기본계획 예산은 이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수십조 원의 장기 예산이 필요하지만, 현재 제시된 5년 단위 계획은 연평균 1조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이 같은 재정 격차는 계획이 ‘공허한 선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더 큰 문제는 성과 평가와 점검 체계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경주시는 국가와 경북도의 상위 계획을 근거로 부문별 목표를 제시했지만, 연차별 세부 로드맵과 지표가 부족하다. 성과 관리 체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실제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장기 계획에 맞춘 예산 확보, 민간 투자 유치, 국비 연계 전략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또한 매년 감축 실적을 점검하고 공개하는 투명한 관리 체계가 도입되어야 실행력에 대한 시민 신뢰를 얻을 수 있다.정의로운 전환의 부재, 사회적 갈등 불가피
탄소중립 과정은 단순한 에너지 전환에 그치지 않는다. 고탄소 산업 종사자, 농민, 취약계층 등 사회적 약자를 포괄하는 정의로운 전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경주시 기본계획은 이 부분에서 뚜렷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경주는 원전·화력발전·중공업 등 고탄소 산업과 긴밀히 연결된 지역이다. 만약 이들 산업이 축소되거나 구조 전환을 겪게 된다면, 종사자들의 고용 불안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노동자 재교육, 직업 전환, 소득 보전과 같은 구체적 대책이 결여된 상태다.
이로 인해 탄소중립 정책은 현장에서 “일자리와 생계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계획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취약계층 보호, 새로운 녹색 일자리 창출, 지역 기반 재교육 프로그램이 동시에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탄소중립은 사회적 합의보다는 갈등과 반발을 키울 위험이 있다.지역 생태계와 개발정책의 충돌
경주시는 기본계획에서 산림, 해양, 습지 등을 탄소 흡수원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동시에 SOC 건설, 관광단지 확장 등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는 흡수원을 보전하기는커녕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탄소중립은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생태계 보전과 직결된다. 개발 정책이 흡수원 보전과 충돌한다면, 계획의 정합성은 심각하게 흔들린다. 특히 경주는 역사문화도시이자 관광도시로서, 생태적 가치와 문화유산이 결합된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지역이다. 따라서 무분별한 개발이 아닌, 생태계 복원과 지속가능 관광이 결합된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경주의 산림 복원, 해양 생태계 보전, 습지 관리 정책은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라 탄소중립 달성의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개발 계획과 환경 정책의 연계성을 강화하고, 시민 의견을 수렴하는 거버넌스 체계가 반드시 구축되어야 한다.지자체 계획 간 연계성 미흡
경주시의 계획은 국가 및 경북도의 상위 계획을 근거로 하고 있으나, 시·군 단위 실행 계획과의 연계는 미흡하다. 이는 정책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소다. 실제로 부문별 목표는 제시되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연차별 단계적 로드맵이 부재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자체 간 협업 체계를 강화하고, 부문별 실행계획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전담 기구를 운영해야 한다. 또한 경주시 차원에서 독자적인 성과평가 체계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계획의 실효성을 담보해야 한다.경주가 나아가야 할 길
그렇다면 경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첫째, 지역 분산형 재생에너지 체계를 적극 확대해야 한다. 태양광·풍력뿐 아니라 지열, 수소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발굴하고, 이를 스마트 그리드와 전기차 충전 인프라와 연계하는 것이 필요하다.둘째,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경주 주요 산업단지에 친환경 공정 도입, 에너지 효율화, 재생에너지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민간 기업과 협력해 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확산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셋째, 생태계 복원과 지속가능 관광을 결합한 지역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역사문화유산과 생태 자원을 함께 보존하면서, 친환경 교통체계(전기버스, 자전거 도로 등)를 결합한 관광산업 전환은 경주만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넷째, 주민 참여형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 탄소중립은 행정이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과제다. 시민, 전문가,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협치 구조 속에서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를 형성해야 지속가능한 실행이 가능하다.
경주시 탄소중립 기본계획은 수치상 목표를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경제·생태 전환을 아우르는 종합 전략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원전 의존, 예산 부족, 정의로운 전환 부재, 생태계 파괴 위험이 지속된다면, 계획은 현실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지금이야말로 경주가 지역 특수성과 강점을 살려, 분산형 재생에너지·지속가능 관광·생태계 보전·주민 참여를 결합한 미래형 탄소중립 모델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경주시민과 다음 세대의 몫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