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공비가 세워짐으로써 할아버지의 뜻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게 될 것입니다.”지난 9월 19일 오전, 안강읍 안강제일초등학교 운동장은 묘한 긴장과 숙연함 속에 차분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햇볕이 내려앉은 운동장 한가운데, 하얀 천으로 가려진 비석은 이제 곧 새로운 터전에 뿌리내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독립운동가 김만득 애국지사의 기공비 이건을 기념하고, 그의 숭고한 뜻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김만득 기공비 이건기념 및 추모식’이 열린 자리였다. 김만득 선생은 경주시 안강읍 강교리 출신으로, 3회 졸업생이자 애국지사의 길을 걸으며 항일운동에 몸 바쳤던 인물이다. 일제 강점기,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그의 이름은 비록 교과서에 크게 실리진 않았지만, 지역 사회에는 여전히 빛바랜 영웅의 서사로 남아 있었다.   행사는 김만득기공비 보존 추진위원회의 주최로 진행되었으며, 주낙영 경주시장, 황영애 경북경주교육지원청 교육장, 김현지 경북남부보훈청 보훈과장, 김동경 한국6.25참전유공자회 안강분회장, 시의원, 지역 기관단체 관계자, 안강제일초 동문과 학생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이건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김만득 선생의 약전 낭독, 추모사와 기념사, 그리고 제막식을 통해 그의 숭고한 뜻을 되새겼다.기공비는 원래 1996년 광복절을 맞아 경주시 강교리 시티재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접근성과 관리 여건이 점차 미흡해졌고, 유족과 지역사회는 선생의 모교인 안강제일초등학교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이전 사업’이 아니라, 후손과 학생들이 매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공비를 되돌려놓자는 뜻이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선생의 손자인 김정철 씨를 비롯한 유족들이 직접 자리해 제막식 순간을 함께했다. 비석을 덮었던 천이 걷히자, 참석자들의 눈빛에는 경건한 존경심과 뭉클한 감정이 동시에 어려 있었다. 유족 김정철 씨는 “할아버지는 험난한 시대 속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한 몸을 바치셨다. 그 뜻을 모교에서 다시 기리게 되어 후손으로서 감개무량하다”며 울먹였다.추모식에서 주낙영 경주시장은 “우리 경주의 자랑인 김만득 선생의 기공비가 모교로 돌아옴으로써 학생들과 시민이 선생의 정신을 늘 가까이에서 되새길 수 있게 되었다”며 “앞으로도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이 지역사회의 정신적 자산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행사는 단순히 비석을 옮겨 세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안강제일초등학교 총동창회와 지역 주민들은 물론, 여러 기관이 힘을 모아 성대한 기념의 장을 만들었다. 운동장에는 꽃다발이 놓이고, 초등학생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아리랑을 합창했다. 지역의 어르신들은 “이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매일 기공비를 보게 될 텐데,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의 의미를 배우게 될 것”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특히 이번 이건은 지역 공동체가 역사를 지켜내는 방식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추모식에 참석한 한 주민은 “도시 개발 속에서 작은 기념비 하나가 잊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처럼 모교와 지역사회가 힘을 합쳐 역사적 유산을 지켜내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계승’의 의미라고 본다”고 말했다.행사의 마지막은 참석자 전원이 함께한 묵념으로 이어졌다.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고개 숙여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모습은, 기공비 이건이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닌 세대 간 화합과 역사 계승의 자리였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   앞으로 김만득기공비 보존 추진위원회는 지속적인 관리와 추모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관계자는 “기공비를 중심으로 학생들과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의 가치를 배우고, 선생의 숭고한 뜻을 지역의 자긍심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비석 앞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뜻을 잊지 않고 이어가겠다” 김만득 선생의 이름은 이제 그의 모교 운동장 한가운데서, 학생들의 발걸음과 함께 다시 살아 숨 쉬고 있다. 박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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