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안강읍 두류공단의 한 아연 가공업체에서 또다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지난 25일 오전 11시 30분경, 이 공단 내 아연 제련업체 ㈜황조의 지하 수조에서 외주업체 근로자 4명이 질식해 2명이 숨지고 2명이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다.사고 현장은 아연을 정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진과 폐기물을 재처리하는 설비의 일부로, 암모니아 저감시설 배관을 설치하던 중이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가동되지 않은 시설 내부에서 다량의 일산화탄소(CO) 가 검출된 점에 주목해 유입 경로와 원인을 집중 수사 중이다.이날 작업을 맡았던 근로자들은 환경설비업체 S사 소속 외주 인력이었다. 이들 중 한 근로자가 수조 내부에 들어간 뒤 나오지 않자, 동료 3명이 연이어 수조로 내려갔고, 10여 분 뒤 작업반장이 이들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모두 쓰러져 있었다는 것. 사고 발생 후 119구조대가 긴급 출동했으나 이들 가운데 2명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2명은 의식을 잃은 채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가동 전 시설인데 왜 유독가스가?”경찰 조사 결과, 사고가 난 수조는 장기간 미사용 상태의 새 설비였으며, 지난 17일 내부 페인트 도색 작업이 이뤄진 뒤 비가 계속 내려 입구를 닫아둔 상태였다.이에 따라 도료의 유기용제나 화학 반응으로 발생한 일산화탄소가 내부에 축적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경찰 관계자는 “측정 결과 일산화탄소 수치가 일반 작업 환경에서는 있을 수 없는 수준으로 높게 나왔다”며 “정확한 농도는 밝힐 수 없지만 인체에 치명적인 수준이었다”고 전했다.일산화탄소는 무색무취의 기체로, 산소보다 헤모글로빈과 결합력이 200배 이상 강하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작업자들이 냄새나 열을 느끼지 못한 채 순식간에 쓰러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은 “가동되지 않은 수조에 일산화탄소가 어떻게 발생했는가”를 핵심 쟁점으로 두고 배관 내부, 도료 성분, 주변 연료 연소시설 등을 정밀 감식 중이라고 밝혔다.
■ 노동부, 특별감독 및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착수특히 사고 직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현장을 찾아 중앙산업재해수습본부를 구성하고, 관계부처 합동 수사를 지시했다.노동부는 즉각적으로 특별감독을 실시하고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김 장관은 “밀폐공간 작업에서 기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정황이 확인되면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노동부 관계자는 “밀폐공간 질식사고 예방을 위해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 측정을 의무화하고 결과를 기록·보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전국 5만여 고위험 사업장을 대상으로 ‘질식사고 예방 3대 수칙’을 긴급 전파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이번 사고는 단순한 현장 부주의 차원을 넘어, 지속적인 안전관리 부실과 제도적 허점이 결합된 인재로 지적되고 있다.■ “두류공단, 환경오염에 이어 안전사고까지…지역민 불안 고조”㈜황조는 두류공단 내에서도 분진·악취·소음 문제로 수차례 민원이 제기된 기업이다.대구지방환경청 관리 대상이지만, 경주시 환경정책과의 감독은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이 많다.인근 지역주민들은 “폐기물 공단으로도 악명이 높았는데, 이제는 안전사고 공단으로 불리게 생겼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주민은 “냄새와 분진 때문에도 힘든데, 이번엔 사람까지 죽었다”며 “안전점검은 보여주기식이고, 사고가 터져야 조사하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은 “노동자가 죽어야 대책이 나온다. 이런 구조라면 앞으로도 사고는 반복될 것”이라고 분노했다.사고에 대해 전문가들도 이번 참사를 지방 산업단지의 구조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외주·하청 중심의 고위험 작업 구조, 안전 예산 부족, 느슨한 행정 감독이 ‘3중 재해시스템’ 을 만들고 있다는 것.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지자체와 환경청, 노동부의 역할이 명확하지 않아 감독 공백이 생기고 있다”며 “특히 지하·밀폐 공간은 사전 가스 측정이 의무지만, 현실에서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종협·박정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