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2025년도 본예산으로 사상 처음 2조 원을 돌파하며 2조1,000억원의 역대 최대 예산안을 발표했다. 시는 이를 두고 민생과 복지, 미래성장에 중점을 둔 투자라 자평하고 있으나, 이를 둘러싼 근본적인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과연 이 예산이 시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설계로 구성되어 있는가, 아니면 그럴듯한 숫자만 앞세운 보여주기식 포장인가.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예산편성의 출발점이 되는 세입 추계의 정확성이다. 2023년 개정된 ‘지방재정법 시행령’에 따라 각 지자체는 세입예산추계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이는 세출 계획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일부 지자체는 여전히 전년도 결산이 아닌 본예산을 기준으로 편성하고 있다. 경주시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피해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보다 축소된 세입 추계는 가용재원 확보에 오차를 낳고, 이는 곧 복지·투자 분야의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야기한다.   이번 예산안에는 ‘포스트 APEC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113억 원이 책정되었다. APEC기념관, 미디어월, 보문 나이트트레일 조성 등 관광과 도시 브랜드 제고를 위한 사업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가 실제로 지역경제에 얼마나 실질적인 기여를 할지에 대한 타당성 분석이나 장기적 운영계획은 부재하다. 특히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적 상황에서, 이 예산이 ‘성과 부풀리기’에 악용될 수 있다는 의혹을 지우기 어렵다.   문제는 또 있다. 경주시가 강조한 복지 예산도 대부분이 일회성 지원에 그치고 있다. 어르신 무료승차, 출산축하금, 청년 주택자금지원 등은 단기적으로는 환영할 만한 정책이지만, 지속가능한 재정계획이 없을 경우 ‘연례적 복지 쇼’에 불과하다. 진정한 복지란 단순한 현금성 지원이 아니라, 장기적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된 사회안전망 구축이어야 한다.   또한 순세계잉여금의 운용방식도 도마 위에 올라야 한다. 순세계잉여금은 세입·세출의 실질 잔여재원으로, 원칙상 다음 회계연도 세입으로 전액 편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를 과도하게 남겨두거나 고의로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재정의 불투명성과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 이는 예산편성의 기본 원칙을 거스르는 행위이며, 시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주범이다.   경주시의 이번 예산안은 표면적으로는 ‘복지 강화’와 ‘경제 활성화’를 표방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총계주의 원칙 위배, 왜곡된 세입 추계, 비효율적 예산배분이라는 구조적 허점이 뚜렷하다.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신뢰다. 예산은 시민의 삶을 지탱하는 공공의 자산이며, 그 편성 과정은 철저히 투명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경주시는 화려한 포장을 걷어내고, 예산의 본질적 역할을 되돌아봐야 할 때다. 시민의 세금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쓰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세입 추계, 균형 있는 세출 설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임 있는 예산 집행과 피드백 체계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이러한 절차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행정의 내실화와 시민 의견 수렴의 폭도 확장되어야 한다. 숫자가 아닌, 신뢰로 기억될 수 있는 예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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