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희시의원 ·수필가, 경주시의원>요즘 동네에서 태극기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쉽지 않다.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하고, 누군가는 슬쩍 거리를 둔다. “요즘 그런 말 하면 오해받는다”는 말이 먼저 돌아온다. 애국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눈치를 봐야 할 언어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부터 조심스러워져야 할 일이 되었을까.어릴 적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달랐다. 읍내로 들어가는 길목, 오래된 상점 앞에는 늘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깃발은 바람을 맞았다. 태풍에 찢어지면 새로 달았고, 비에 젖으면 말려 다시 올렸다. 그 누구도 그것을 유난스러운 행동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저 당연한 일상이었다.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나라가 있어야 우리가 있는 거다.”
그 말은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라, 전쟁과 가난을 몸으로 견뎌낸 세대의 삶의 언어였다. 그분들에게 국가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울타리였다.시장에서 만났던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새벽부터 좌판을 펴고 해 질 녘 허리를 펴며 “그래도 나라가 잘 돼야지”라고 말하던 분들. 그분들에게 애국은 구호가 아니라, 묵묵히 삶을 지켜온 태도였다.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런 마음은 이념의 잣대로 나뉘기 시작했다. 나라를 걱정하면 특정 진영으로 분류되고, 태극기를 들면 극단으로 규정된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침묵을 선택한다. 하지만 침묵이 길어질수록 공동체의 뿌리는 조금씩 마른다.얼마 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 도심 큰길마다 오성홍기가 걸려 있는 모습을 보았다. 특별한 날도 아니었다. 국기는 그 나라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했다. 그 장면을 보며 우리는 어떠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극기를 달거나 애국가를 말하는 일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가.태극기와 애국가는 특정 이념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이며, 오늘을 지탱해온 약속이다.나는 오늘도 조용히 태극기를 단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함도, 어떤 뜻을 드러내기 위함도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보며 그저 이 땅에서 살아온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지금 이 일상이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