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허리띠를 졸라매며 20년 넘게 부어 이미 납입을 끝낸 건강보험이 있는데, 최근 알게 된 설계사로부터 “옛날 보험은 요즘 나오는 신종 치료를 보장하지 못하니 해지해서 환급금을 받고 최신 100세 만기 보험으로 갈아타라”는 권유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돈은 안 나가서 든든했는데, 막상 요즘 보험이 훨씬 넓게 보장해 준다는 말을 들으니 이대로 둬도 될지 불안하다”고 말했다.현장에서는 장년층과 노년층 사이에서 이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 특성상 건강에 대한 염려는 누구보다 크고, 의료 기술의 발달로 표적항암치료나 면역항암제, 간병인 지원 등 과거에는 없던 보장 영역이 크게 확장된 것도 사실이다. 설계사들이 내세우는 ‘보장 범위의 확대’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뜻이다.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미 보험료 납입을 마치고 혜택만 남긴 보험을 해지하고 새로 가입하는 것은 대다수 소비자에게 득보다 실이 훨씬 큰 선택이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소비자원 역시 기존 보험을 해지하고 새로운 보험을 가입하게 하는 이른바 ‘부당 승환계약(보험 갈아타기)’에 대해 매년 소비자 경보를 발령하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사실관계를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 과거에 가입해 60세 이전에 납입을 마친 보험들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높은 예정이율(확정금리)이 적용된 상품이 많다. 예정이율이 높다는 것은 같은 보장을 받더라도 보험료가 훨씬 저렴하게 책정되었다는 의미다. 게다가 과거 상품들은 3대 질병(암·뇌·심장질환)의 진단 기준이나 입원·수술비 지급 조건이 현재 상품보다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미 돈을 다 냈으니 앞으로 숨만 쉬어도 만기 때까지 공짜로 작동하는 든든한 안전망인 셈이다.둘째, 60대 전후의 나이에 기존 보험을 깨고 새로 가입하면 보험료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보험료는 가입 당시의 연령과 위험률을 기준으로 산출된다. 30~40대에 가입했던 보험과 60대에 새로 가입하는 보험은 월 납입액 자체가 다를뿐더러, 고정 소득이 줄어드는 은퇴 시기에 다시 10년, 20년간 다달이 높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구조는 노후 가계에 큰 짐이 된다. 중도에 보험료가 부담스러워 해지라도 하게 되면 원금 손실은 물론 보장마저 완전히 잃게 된다.셋째, ‘보장 공백’이라는 치명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기존 보험을 해지하고 새 보험에 가입하는 순간, 암 등 주요 질병에 대해 가입 후 90일간 보장을 아예 받지 못하는 ‘면책기간’과 1~2년간 진단금의 절반만 지급하는 ‘감액기간’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질병 발병 위험이 급격히 높아지는 60대 이후에 스스로 세 달간의 무방비 상태를 만드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다. 또한 과거보다 까다로워진 고지의무 탓에 최근 몇 년간 처방받은 혈압·당뇨약이나 가벼운 진료 이력만으로도 향후 보험금 지급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그렇다면 과거 보험에 없는 최신 의료 기술이나 80세 이후의 만기 연장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전면 해지 후 재가입’이 아니라 ‘유지 후 핀셋 보완’이 정답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미 납입이 끝난 기존 보험은 노후의 기본 주춧돌로 그대로 유지하면서, 과거 상품에서 빠진 표적항암약물허가치료비나 간병인 사용 일당, 혹은 뇌혈관·허혈성 심장질환처럼 범위가 넓어진 특약만 단독 상품이나 소액의 추가 가입으로 덧붙이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기존의 유리한 보장과 면책 혜택을 온전히 지키면서도 월 수만 원 수준의 최소 비용으로 최신 의료 환경에 대비할 수 있다.보험은 만약을 대비하는 울타리지, 유행을 따라 해마다 새로 짓는 집이 아니다. 젊어 흘린 땀방울로 60세 이전에 완납해 둔 보험증권은 그 자체로 성실하게 살아온 세월의 훈장이자 가장 확실한 노후 자산이다. 달콤한 권유에 흔들려 오랜 세월 다져온 울타리를 스스로 허물기보다, 내 증권의 진짜 가치를 정확히 알고 부족한 틈새만 현명하게 메우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