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경주역 뒤편에서 타지 유학생과 서민들의 정겨운 보금자리 역할을 하던 황촌마을이 동네 골목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수평적 호텔로 탈바꿈시키는 혁신적 도전에 나선다.황촌마을은 한때 경주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하숙집과 자취방이 밀집해 향학열이 넘치던 동네였다. 그러나 저출산에 따른 학생 수 급감과 급격한 주민 고령화, 철도 이설 등으로 오랜 기간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침체됐던 마을에 반전의 계기가 마련된 것은 지난 21년부터 24년까지 4년간 추진된 ‘행복황촌 도시재생 뉴딜사업’ 덕분이다. 기반 인프라 정비와 함께 거점 시설인 ‘황촌마을활력소’가 조성되며 골목은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황촌마을은 이러한 도시재생 성과를 발판 삼아 한 단계 더 도약한다. 특정 대자본의 빌딩형 호텔이 아닌, 마을 골목에 흩어져 있는 민박과 게스트하우스가 ‘객실’이 되고, 동네 식당이 ‘조식 레스토랑’, 골목 카페와 공방이 ‘부대 편의시설’ 역할을 수행하는 ‘경주형 분산형(수평적) 마을호텔’을 구축한다.
경주시는 지난 3일 황촌마을활력소에서 ‘2026년 경주시 사회연대경제 혁신모델 발굴 및 확산 사업 설명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청사진을 공식 발표했다. 설명회에는 마을 주민과 상인은 물론 타 지자체 관계자까지 70여 명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행정안전부와 경상북도, 경주시가 10억 원을 투입하는 이번 사업의 핵심 화두는 공공 지원 종료 후에도 작동하는 ‘자생적 골목 경제망 구축’이다.■ ‘경주시 사회연대혁신모델 사업단’‘경주시 사회연대혁신모델 사업단’은 행정안전부, 경상북도, 경주시의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풀뿌리 경제 자립 모델을 기획·실행하는 민·관 협력 추진 기구이다. 단순 보조금 집행 방식에서 탈피하여, 지역 내 유휴 공간 자원화, 스마트 통합 결제망(황촌PASS) 개발, 통합 도시 브랜딩, 로컬 비즈니스 모델 고도화 등 프로젝트 전반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골목 상권 상인들과 주민 협동조합이 시장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전문 컨설팅, 서비스 표준화, 대외 판로 개척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행복황촌 협동조합’‘행복황촌 협동조합’은 황촌마을 도시재생 뉴딜사업 추진 과정에서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결성한 자립형 마을관리 협동조합이다. 마을 거점 시설인 ‘황촌마을활력소’ 및 ‘황촌 상권활력소’의 실질적인 수탁 운영 주체로서 마을 카페, 게스트하우스, 주민 공동 밥상 등 다양한 생활 밀착형 공동체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번 마을호텔 프로젝트에서는 실제 객실 및 식음·체험 제휴 서비스를 공급하는 현장 운영의 구심점 역할을 맡는다. 사업 운영을 통해 창출된 수익 일부를 홀몸 어르신 케어 및 취약계층 돌봄 등 마을 자체 복지 안전망으로 재투자하는 사회연대경제의 현장 실천 주체이며 현재 행복황촌 마을호텔은 35개소이 이른다.■ 행복황촌 사회연대혁신모델 사업단올해 사업단의 과제올해 경주시 사회연대 혁신모델 사업단이 집중 추진하는 핵심 실행 과제는 크게 네 가지 축으로 추진된다. 1. 거점 프런트 및 복합 라운지 조성: 중심 거점인 ‘황촌마을활력소’ 1층을 리모델링하여 방문객 통합 체크인·체크아웃, 짐 보관, 마을 여행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 프런트 데스크를 구축한다.2. 모바일 통합 결제 플랫폼 ‘황촌PASS’ 도입: 흩어져 있는 숙박시설, 식음료점, 체험 공방을 하나의 디지털 네트워크로 묶는 자체 모바일 패스를 연내 상용화한다. 방문객에게는 원스톱 예약·할인 혜택을, 상인들에게는 체류 시간 연장에 따른 직간접 매출 증대 효과를 제공한다.3. 주민 전문역량 강화 ‘마을호텔 학교’ 운영: 지속가능한 경영 주체를 양성하기 위해 위생·접객·서비스 표준 매뉴얼을 수립하고, 주민 대상 전문 ‘로컬 호텔리어’와 ‘골목 해설사’ 자격 양성 과정을 상반기부터 순차 가동한다.4. 사회연대 복지 기금 적립 체계화: 플랫폼 결제 수수료 및 마을호텔 수익의 일정 비율을 자동으로 적립하여, 취약계층 집수리, 홀몸 어르신 반찬 나눔, 골목 환경정비 등 마을 복지에 재투자하는 환원 프로세스를 정립한다.■ 이탈리아 `알베르고 디푸소`, 정선 `18번가`의 기적… 경주로 이어진다마을호텔의 개념은 해외와 국내 타 지자체에서 이미 훌륭한 로컬 경제 활성화 모델로 검증된 바 있다.대표적인 해외 사례는 이탈리아의 `알베르고 디푸소(Albergo Diffuso·분산형 호텔)`다. 1980년대 지진으로 폐허가 됐거나 이농 현상으로 버려진 중세 마을의 빈집들을 수리해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 체인처럼 엮어낸 모델이다. 중앙 안내소에서 체크인을 하고 골목을 걸어 객실로 이동하며, 지역 농산물로 만든 식사를 지역 식당에서 해결한다. 관광객은 이탈리아 소도시의 진짜 일상을 경험할 수 있어 열광했고, 쇠퇴하던 마을은 막대한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며 부활했다.국내에서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의 `마을호텔 18번가`가 꼽힌다. 폐광 이후 인구가 급감하며 빈집이 늘어가던 골목의 상인들이 연대해 스스로를 호텔이라 명명했다. 중국집은 호텔 레스토랑이 됐고, 사진관은 호텔 카페가 됐다. 이질적인 점포들이 하나의 협동조합으로 뭉치면서 고한읍은 전국적인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경주 황촌마을 역시 이 성공의 궤적을 잇는다는 각오다. 중심 거점인 `황촌마을활력소` 1층에 방문객을 맞이할 통합 안내 라운지(프런트)를 구축하고, 인근 점포들을 하나의 망으로 묶어 결제할 수 있는 모바일 플랫폼 `황촌PASS`를 연내 도입할 계획이다. 점 단위로 흩어져 있던 방문객의 동선을 선과 면으로 확장해 체류 시간을 늘리고, 골목 상권 내 소비를 극대화하겠다는 치밀한 전략이다.■ 감성 넘어선 `전문성`이 관건… 수익은 지역 복지로 선순환하지만 마을호텔이 단순한 낭만이나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냉정한 시장 논리 속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일반 상업 호텔에 버금가는 서비스 질과 위생 상태, 그리고 방문객의 불편을 즉각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체계적인 운영 시스템이 필수적이다.사업단과 주민 협동조합도 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경주시는 연말까지 복합 라운지 리모델링과 스마트 결제 시스템 개발을 서두르는 한편, 주민들의 서비스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을호텔 학교`를 열고 전문 `로컬 호텔리어`와 `골목 해설사` 양성 프로그램을 순차적으로 가동한다. 주민 스스로가 전문성을 갖춘 경영 주체로 거듭나야만 지속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더욱 돋보이는 점은 이익의 배분 구조다. 플랫폼 운영과 마을호텔 통합 결제망을 통해 얻어진 수익금 중 일부는 홀몸 어르신 반찬 지원, 취약계층 집수리 등 동네 복지사업에 재투자된다. 단순한 상업적 이윤 추구를 넘어, 경제적 성과가 지역사회 전반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는 `사회연대경제`의 선순환 고리를 완성한다는 구상이다.경주형 마을호텔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이는 단순히 황촌마을 하나의 경사가 아니다. 오랜 기간 문화재 보호 규제 등으로 개발에 어려움을 겪어온 경주의 여러 구도심과 전국 쇠퇴 지역에 적용할 수 있는 지역공동체 기반 체류형 관광(CBT)의 새로운 표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행복황촌의 당찬 도전이 경주 로컬 경제의 지형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