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와 소비 위축으로 지역의 모세혈관인 동네 골목상권이 고사 위기에 처했지만, 경주시의 상권 활성화 행정은 여전히 10년 전 ‘전통시장’의 틀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 지자체들이 정부 지원을 끌어오기 위해 앞다퉈 ‘골목형상점가’ 지정 문턱을 낮추는 동안, 경주시는 관련 조례 제정조차 미루며 사실상 골목상권을 방치해 왔다는 비판이 지역 소상공인들 사이에서 거세게 일고 있다.특히 이 과정에서 경주시가 지역 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19개 등록 전통시장 상인회의 눈치를 보며 행정을 후퇴시켰다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된다. 여기에 영세 상인들의 권익을 대변해야 할 경주시소상공인연합회마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경주 지역 골목상권이 기득권 논리에 희생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지방 골목상권’ 혜택 늘리는데… 제도적 기반조차 없는 경주시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온누리상품권 개편 방안을 발표하며 내년부터 지방 골목상권(골목형상점가)에서 상품권을 사용할 경우 구매할인(5%)에 사후환급(3%)을 더해 총 8%의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나아가 지방에서 온누리상품권을 쓰면 관광지 입장권이나 숙박권을 연계해 주는 등 전통시장과 지방 취약 골목상권으로 소비를 유도하는 범정부적 지원책을 내놓았다.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책도 ‘골목형상점가’로 지정되어야만 그림의 떡이 아닌 실질적 혜택이 된다. 골목형상점가로 지정되면 온누리상품권 가맹점 등록은 물론 각종 정부·지자체 공모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하지만 경주시의 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골목형상점가 지정 요건을 완화해 전국적으로 지정 건수가 급증(올해 8월 기준 2,130곳)했고, 최근에는 난립을 막기 위해 다시 기준을 정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타 지자체들이 완화된 기준을 활용해 국비 지원과 온누리상품권 사용처를 공격적으로 확보하는 골든타임 동안, 경주시는 관련 조례조차 제대로 정비하지 못해 지역 소상공인들의 기회비용만 날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2022년 입법예고 후 사라진 지역상권 활성화 상생 조례… ‘19개 전통시장’ 눈치 보기였나지역 상인들과 상권 전문가들이 경주시의 소극적 행정을 강하게 질타하는 대목은 지난 2022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주시는 소상공인 보호와 상권 회복을 위해 ‘경주시 지역상권 상생 및 활성화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해당 조례안은 실제 행정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슬그머니 불발됐다.지역 소상공인들은 이 석연치 않은 조례 무산의 배경에 기존 전통시장 상인회와의 ‘밥그릇 갈등’과 행정의 ‘눈치 보기’가 자리 잡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경주시는 지난 2015년 「경주시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조례」를 개정한 이래 줄곧 전통시장 중심의 지원 정책을 펴왔다. 현재 경주시 관내에 등록된 전통시장 단체만 19개소에 달한다.이는 최근 조례 개정 진통을 겪고 있는 경남 김해시의 사례와 판박이다. 김해시 역시 골목형상점가 지정 기준 완화를 두고 “한정된 지원 예산이 쪼개지고 손님이 분산된다”는 기존 전통시장 측의 반발에 부딪혀 지정이 늦어지는 등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결국 조직화된 19개 전통시장 상인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경주시의 특성상, 집행부가 표심과 직결된 전통시장 단체의 반발을 우려해 영세 골목상권을 위한 조례 제정을 스스로 접은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구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지역의 한 소상공인은 “전통시장은 해마다 아케이드 설치다, 주차장 건립이다 해서 수십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으면서, 정작 임대료와 고물가에 피눈물을 흘리는 동네 골목 식당과 점포들은 온누리상품권 가맹조차 못 해 손님을 뺏기고 있다”며 “행정이 목소리 큰 단체 눈치만 보며 지역상권 활성화와 소상공인 지원에 관한 행정적 제도를 위해 2022년 입법예고까지 했던 조례를 없던 일로 만든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성토했다.■ 대표성 잃은 소상공인연합회의 ‘침묵’… “기득권 넘어 상생의 길 열어야”행정의 무책임 못지않게 지역 소상공인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것은 ‘경주시소상공인연합회’의 무대응이다. 김해시를 비롯한 타 지자체에서는 소상공인연합회가 전면에 나서 타 지역과의 지정 건수 격차를 지적하며 조례 개정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반면 경주시소상공인연합회는 2022년 조례안이 불발될 당시에는 물론, 골목형상점가 조례 제정이 지연되는 이상 기류 속에서도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대변해야 할 법정 단체가 제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조심스럽게 새어 나오는 이유다.관광도시 경주의 특성상, 정부가 내년부터 추진하는 ‘온누리상품권의 지역 관광·숙박 혜택 연계’는 지역 골목상권에 엄청난 기회 요인이다. 황리단길 등 일부 활성화된 상권을 넘어, 성건동·용강동·황성동 등 구도심과 주거 밀집 지역의 침체된 골목상권을 ‘골목형상점가’로 묶어내면 관광객의 발길과 시민의 소비를 동네 골목까지 확산시킬 수 있는 길이 손윤희 시의원이 이번 10월 회기에 발의해 소상공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은 제로섬(Zero-sum) 게임을 하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다. 파이 자체를 키워 지역 내 소비를 진작시켜야 할 동반자다. 경주시는 이제라도 특정 단체의 눈치 보기 행정에서 벗어나, 왜 2022년 조례안이 폐기되었는지 시민 앞에 투명하게 밝히고 실효성 있는 골목형상점가 지원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다음호에서는 골목형 삼점가에 정책에 대한 부분과 골목형상점가 조례를 발의한 손윤희의원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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