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긴급성보다 원칙이 우선이다. 빠른 길보다 바른 길이 지름길이다.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이 포화시점 에 이르렀다는 이유로 단기저장 또는 처분전저장시설이라는 명칭으로 저장 시설을 추가건설하려고 한다.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할 공간이 없다면, 원자 력발전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국내 에너지 정책에서 원전 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정도에 이른다. 상당히 중요한 에너지원이 원 자력인 것은 사실이다.
사용후핵연료 저장문제를 시급히 해결 해야만 원자력 발전을 계속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를 한 가지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정부가 내세워야할 명분은 긴급성이 아니라 원칙이라는 점이다.
급하다는 것은 이유는 될 수 있지만, 명분은 될 수 없다. 사용후핵연료는 방사성물질로 분류되고 있으며, 국제 위험물운송규칙(해상·항공·철도·내륙선박운송)은 방사성물질을 위험물 질로 분류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위험물 안전관리법은 방사성폐기물을 위험물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 건축법 상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시설 은 국제적으로 위험물로 인정된 방사 성물질을 저장하고 있는 시설임에도, 근거와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일반공 작물로 신고 되어있다.
더욱이 시민들의 안전을 가장 먼저 지 켜야할 경주시는 이와 같은 사실을 제 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 주시민들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바에 따라, 위험과 위협으로부터 생명 과 안전을 보호받은 권리가 있으며, 위 험물이 경주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 시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 지자체의 담당 자도 필자가 문제제기를 한 이후에 이 문제에 대해서 겨우 파악하게 되었으 나, 2개월 후 담당자가 교체되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산업부에서 원전 의 안전에 대해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기술적 안전관리가 전부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내법은 원자력발전과 괴리가 상당하다. 사용 후핵연료는 방사성폐기물 관리계획에 포함되어 있지만, 원자력안전법에 따 르면 방사성폐기물이 아니다. 국제공 인 위험물질인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 는 시설은 건축법에 따라 위험물 저장 시설이 아닌 일반 공작시설물이 된다.
최고의 원자력규제기관인 원자력 위 원회는 사용후핵연료가 위험성을 가진 방사성물질이라고 한다. 그 방사성물 질은 배에 실으면 위험물인데 지상에 내려오면 위험성이 있지만 위험물이 아니다. 그런데 그 물질을 저장한 시설 에서 사고가나면 20~30km 범위가 영 향을 받게 되며 비상조치가 가능해 진다. 이런 시설물이 주민동의 없이 신 고만으로 축조가 가능하다.
연탄공장, 오폐수 처리시설을 건설하 더라도 공청회 등을 통해 인근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필요한 경 우 주민들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훨씬 더 위험한 물질인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하는 시설은 경주시민 들의 동의도 없이, 공청회도 없이 신고 만으로 건설되었다. 그것을 승인 한 것은 경주시다. 이 모든 것들이 현실과 낙후된 법률 간의 괴리로 발생한 것 이다.
원자력안전법, 건축법, 위험물 안전관 리법, 방폐물 관리법, 방폐장특별법 이 모든 모순점들을 바로 잡고, 시민들 에게 모든 정보를 알리고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 문 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급하다 고 해서 돈 몇 푼을 지역에 던져주고, 시설물부터 짓고 보자는 식의 정부의 정책을 더 이상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돈의 노 예가 될 것이며, 발전소라는 식탁 주위 를 맴도는 개가 될 것이다.
옛 속담에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쓰랴’ 라는 말이 있다. 바늘구 멍에 실을 매는 것은 원칙이다. 위험물 을 아무리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더라 도 위험물이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것 역시 원칙이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는 다면, 이미 터진 문제들과 앞으로 터질 문제들을 봉합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 이라는 것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 다. 아울러 경주시민들은 스스로의 안전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가져야 할 것이다. 이원희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