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이름을 남기겠다고?신라의 대군과 최후의 결전을 치러야 하는 계백장군은 아마 패배를 예감했을 것이다. 전장에 나가기 직전 황급히 집에 들른 장군은 아내와 자식들에게 “적에게 죽거나 노예가 되느니 내 손에 죽는 게 낫지 않느냐.”며 비장한 연설을 한 후 칼을 빼어든다.  그런데 아내의 반응이 뜻밖이다. “그렇습니다. 적에게 잡혀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목숨을 깨끗이 버리겠습니다. 어서 죽여 주십시오.”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정 반대였다.  아이들을 품속에 곡 껴안으며 하는 말이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제....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잖여!” 계백장군을 똑바로 쳐다보며 죽기 싫다고 발악을 한다. 남편인 장군은 이름이라도 남지만 자신은 의미 없는 죽음이라는 뜻이다. 또 생존에의 본능이자 자식에 대한 모성애다. <황산벌>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이런 말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장자>에 이 이름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소인은 이익을 위해 죽고, 선비는 이름을 위해 죽고, 대부는 가문을 위해 죽고, 성인은 천하를 위해 죽었다.  이 모두는 하는 일이 다르고 얻은 이름도 다르지만 자기 몸을 해쳐 그 본성을 상한 점에서는 같은 것이다....중략...백이는 이름을 위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고, 도척(공자 시대에 있었던 흉포한 도둑의 이름. 하는 짓이 매우 못되고 모진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으로 그의 이름이 명사화되어 쓰이고 있음. 그러나 그의 형 유하혜는 공자도 존경한 훌륭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은 잡혀 죽었다.  이 도척에게 누가 “도둑에게도 도(道)가 있느냐”고 물었다. 도척의 대답이 걸작이다. “있고말고.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게 성(聖)이요.  도둑질에 앞장서는 것이 용(勇)이요. 도둑질 후에 맨 나중에 나는 것이 의(義)요. 도둑질 할 것인지 말지를 판단하는 것이 지(智)요. 훔친 물건을 골고루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인(仁)이다.” 두 사람은 죽은 장소가 다르지만 목숨을 버리고 본성을 해친 것은 마찬가지다. 어찌 백이는 옳다하고 도척은 틀렸다고 하겠는가? 천하 사람들 모두가 죽기에 바쁘다. 인의를 위해 죽을 자리에 서면 세상 사람들은 군자라 한다.  돈과 재물을 위해 죽을 자리에 서면 소인이라 한다. 그 죽는 것은 같은데도 군자가 있고 소인이 있다는 것이다. 목숨을 해치고 본성을 상한 점에서는 백이도 도척과 다를 바 없다. 하물며 그 속에서 군자와 소인을 가릴 수 있겠는가? 장자는 이름이든 재물이든 이 때문에 몸을 해치는 것을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천수를 다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요즘 자신의 뜻을 펼치겠다고 바쁜 사람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이름을 남기겠다는 욕심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무슨 큰 건물을 짓고 표지석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장자의 기준에서 보면 다 허망한 것들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