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君子 周急 不繼富(군자 주급 불계부)공자(孔子)가 어느 제자를 시켜 모친을 모시고 사는 어떤 사람에게 심부름을 보내는데 제자가 “쌀을 좀 주면 어떻습니까?”라고 건의했다. “6석을 갖다 주어라”라는 공자의 지시에 제자는 “좀 더 주면 안됩니까?”라고 다시 건의한다. “그러면 16석을 갖다 주어라”라는 공자의 지시를 어기고 이 제자는 80석을 갖다 주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공자는 “예전에 그 사람의 말은 살찌고 좋은 옷을 입은 것을 봤다.”고 꾸지람을 한 뒤에 다음과 같이 하면서 말한다.“吾聞之也 君子周急 不繼富”(오문지야 군자 주급 불계부. 논어 옹야편 3장) “내가 들은 바로는 군자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지 부유한 사람을 계속 도와주지 않는다.” 과연 공자다운 말이다. ‘2천 5백년간 공자의 가르침이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구나’라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어야지 왜 살만한 사람에게 계속 도와주려하느냐는 가르침이다. 잘 사는 사람은 가만 놔둬도 알아서 잘 산다. 우리 생활에서 공자의 이 말을 실천할 수 있는 예가 부조금이다. 형편이 되는 사람에게는 좀 적게 해도 되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조금 많은 부조금을 내는 게 미덕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 반대로 돌아간다. 형편이 되는 사람에게 오히려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에 맞춰 더 많은 부조금을 내는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해야 옳다.요즘 소득주도성장 때문에 일부 신문과 폐북 등에서 난리다. 특히 자유한국당에서 정책기조를 바꿔야 된다고 연릴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고 바른미래당은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고 정의당에서는 적극 지지를 보내고 있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서민층과 하층민에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이는 결국 소비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며 ‘자신있게 옳은 방향’이라며 정책을 바꿀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보수기득권에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결코 국가 경제발전이나 국민소득과 연결되지 않는다며 철회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과거 이명박, 박근혜 시절처럼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을 펴야 이른바 <낙수효과>로 저소득층이 더 잘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가 발전한다는 주장이다.
경제정책이 하루아침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몇 년 지나봐야 가시적인 결과나 성과가 나타나겠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루기로 하고, 필자는 여기서 공자(孔子)의 말을 빌려 소득주도성장 편을 들고 있지만 경제정책 등 거창한 담론을 앞세우고 싶지는 않다. 필자는 다만 인간적인 측면에서 저소득층을 배려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지지할 따름이다.
이 땅에 한 생명으로 태어나는 게 얼마나 어렵고 신비롭고 숭고한가? 그러나 주위를 살펴보자. 병들고 배고픈 사람이 너무 많다. 춥고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 처처에 깔려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도 많지만 집 밖에조차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더 많다. 하루하루 작은 돈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 많아도 너무 많다. 반면에 인간으로 태어나 하루하루를 천국처럼 살고 있는 사람도 많다. 아니 천국보다 더 즐겁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부유하고 건강하고 자녀도 잘 된 경우다. 뜯어보면 세상사 모두 행복할 수는 없지만 부유한 이들 대부분은 또 오래 살기도 한다. 그러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단지 나태하거나 능력이 없어서 그럴까? 물론 그런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열심히 노동을 해도 거치처럼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도 많다. 불편한 몸으로 하루종일 폐지를 주워 2-3만원의 벌이로 단칸 셋방에 살면서 하루 한끼로 연명하는 사람들 의외로 많다. 우리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그런 사람을 매일 수십명씩 목격하고 있지 않는가. 한 마디로 불쌍하기 짝이 없다. 가난은 구조적이기도 하지만 부모의 유산에 크게 기인된다. 저소득 노동자들이나 알바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배려하자는 게 뭐가 잘못인가?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국민들이 똑 같이 잘 살게 할 수는 없어도 골고루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국가의 의무가 아닌가. 헌법에 규정된 국가의 의무다. 선진국이라고? 세상에 이런 선진국은 없다. 개업한 통닭집에서 6천원짜리 두 마리를 사서 집으로 가져가다가 폐지 줍는 할머니에게 한 마리를 드렸더니 ‘이런 거 평생 처음 먹어본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할머니의 말을 필자는 평생 잊을 수 없다.대기업이 성장하면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처럼 저절로 서민들도 잘 살게 된다는 <낙수효과>는 이미 경제학계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고 미래의 위험을 대비하여 돈을 곳간에 쌓아놓고 있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사내유보금이라고 불러준다.노동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많다. 저 소득층 사람들도 많다. 이들도 국민이고 우리 이웃이다. 한달에 한번쯤 영화도 보고 통닭 한 마리 사먹을 수 있도록 해주자는 데 뭐가 그리 잘못되고 배는 또 그리도 아픈가? 인간으로 태어나기 얼마나 어려운가? 그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만들어주면 어디가 덧나는가. 불쌍한 사람들에게 좀 나눠주는 삶이야말로 정말 숭고하지 않는가? 연금개혁하면 연금이 줄어든다고? 연금 못 받는 사람이 훨씬 많다. 없이 사는 불쌍한 사람 좀 생각하며 살자. 이게 현 정부의 가치다. 우리가 선택한 정부인데 좀 더 지켜보자. <김영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