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구 기자] 지난달 28일(일) 전국에서 참석한 고창 오씨 후손들이 경주시 서악동 제실에서 화수회를 개최했다.고창 오씨는 한국 오씨 중 제일 맏집으로서 고려조의 무인 난을 피하여 황해도 평산, 연안, 해주 등지로 이거하여 번창 했으니 전국의 4/3 정도가 원한의 3.8선으로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경주 입향조 오세재 선생은 고창 오씨의 시조 오학린의 5세손으로 1132년 개경에서 태어났다.
한림별곡에 오생유생 그 글솜씨가 극찬을 받은 오세재 선생은 무인 난을 피하여 선대 외가인 신라로 오게 되어 경주에 뿌리를 내려 경주 입향조가 됐다.고려조의 죽림칠현 중 좌장인 오세재는 35세 연하인 이규보로 부터 현정 선생이라는 사시를 받게 된다.그러나 과거에 들지 못한 가난한 선비 오세재는 평생 남긴 글이 엄청 많다고 하나 현재 전하는 글이라고는 보한집, 파한집, 락옹비설, 서하집 등에 몇 편의 글이 보일 다름이다.경주 황성공원의 "극암“ 시비, 전북 고창군 삼인면의 "병목" 시비 등이 그의 흔적이라고나 할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하였으니 고려조의 세상을 울렸든 선비의 글이 오늘도 우리 후학들의 심금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