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전 세계의 이목이 경주로 쏠린다.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화백컨벤션센터(하이코)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국내외 주요 인사들이 찾게 될 경주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국가 이미지의 최전선에 선 도시가 된다. 그런데, 이 같은 중요한 시점에 경주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보문관광단지 일대가 불법광고 차량으로 ‘도배’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최근 기자가 현장을 찾은 보문단지 진입로에는 곳곳에 광고물을 실은 트럭과 차량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차량 옆면에는 숙박업소와 음식점 상호명, 전화번호 등이 빼곡히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일부는 입간판까지 인도에 세워둔 채 고객 유치에 한창이었다. 이러한 차량은 도로변 쉼터 입구나 보행로 한가운데에 세워져 시민 통행을 방해하고, 자칫 보행자 사고로 이어질 위험도 높은 상황이었다.   더욱 문제는 이러한 차량 광고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의 단속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경주시는 “관련 민원이 접수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시민들은 오히려 “이게 민원 없이 방치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일부 차량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며칠 후 다시 같은 자리에 주차되기를 반복한다. 차량에 계고장을 붙이고 차주에게 연락하는 수준에 머무는 현행 단속 방식으론 전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과태료를 부과한 후에도 차량이 이동하지 않더라도, 현행 지침상 추가 처분은 어렵다”며 “여러 부서 간 협조를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교통수단을 이용한 광고물은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거나 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지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업소가 차량에 광고 스티커를 붙이거나 입간판을 세우고도 아무런 절차 없이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도 지난해 스티커 형태의 광고물 역시 도료로 표시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법적 규제가 가능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즉, 단속이 가능한 법적 근거는 이미 갖춰져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기관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은 행정력의 부재이자 책임 회피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경주시가 최근 보문단지의 진입 경관 개선을 위해 조형물과 가로수 정비, 조명 설치 등 외형 정비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이러한 ‘눈에 보이는 치장’만으로는 도시의 진정한 품격을 완성할 수 없다. 국제회의 도시로서의 자격은 세심한 관리와 기본적인 도시 질서에서 출발한다.이제는 보여주기식 정비가 아닌 시민과 관광객의 안전을 고려한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불법 광고물 정비 계획이 절실하다. 특히, 보행자의 시야를 가리는 광고물은 단순한 경관 훼손을 넘어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   시 관계자가 말한 것처럼, 단일 부서에서 모든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국제 행사를 앞두고 있는 도시가 “우리는 몰랐다”고 말하는 건 면책 사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부서 간 협업 체계를 강화하고, 시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지속 가능한 광고 질서 확립에 나서야 할 때다.   불법광고 차량 한 대가 무너뜨리는 건 단지 도시 미관만이 아니다. 이는 경주가 세계에 보여줄 ‘첫 인상’이자,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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