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취임사존경하고 친애하는 동기회원 여러분.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가슴 벅찬 심정으로 동기회장 취임의 소회를 밝히고자 합니다.동기 여러분, 돌아보면 우리는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인생 역정을 살아왔습니다. 1958년 개띠의 이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는 그야말로 개처럼 팔자가 좋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돌을 맞이했을 때 사라호 태풍이 불어와 경상도를 초토화시켰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우리들을 살리려고 있는 힘을 다한 덕분에 우리는 구사일생 살아남았습니다.겨우 정신을 차리고 두 살이 되니 4월 19일에는 또 대학생 형님들이 무슨 데모를 한다고 난리를 쳤습니다. 세 살이 된 1961년 5월 16일에는 또 군인 삼촌들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서러운 것은 배고픔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보릿고개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니 미국에서 원조한 강냉이 빵과 우유 덕분에 그나마 허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몇몇 착한 동기는 집에서 굶주리고 있는 동생에게 갖다 주려고 물로 배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65명이나 되는 콩나물 교실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콩나물’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탄생되었습니다. 후에 ‘콩나물버스’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교실이 모자라 오후반 수업도 했습니다. 1958년에 96만명이나 태어난 베이비붐 중심세대였기 때문입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라는 졸업식 노래를 뒤로하고 중학교에 가려고 하니 뺑뺑이를 돌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뺑뺑이 1세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나마 행운이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몇몇 친구들은 대구로 부산으로 공장에 취직하러 갔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동기들은 또 가정형편이 좋거나 공부를 잘하여 고등학교까지 다닐 수 있었습니다. 행운이었습니다.교련복을 입고 목총을 들고 총검술을 배운 추억은 우리 세대만이 갖고 있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예비고사와 본고사라는 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간 친구도 많습니다. 지금은 22개월만 하는 군대를 32개월 동안 꼬박 채우면서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충성을 다하기도 했습니다. 짝사랑했던 여고생도 이제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30대 초반에는 나라가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특히 1980년대 격동의 시대에 우리는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세상을 바꿔보자’며 변화를 추구하던 갈구하던 친구들은 진보의 길을 가게 되었고, ‘이대로가 좋다’며 안정을 추구하던 친구들은 보수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나이 40에는 IMF라는 생각지도 못한 사태를 맞아 많은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IMF는 사라호 태풍보다 더 무서웠습니다.이 와중에서도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경제가 나아진 덕분에 우리는 인생의 중반기에는 그런대로 잘 살았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해외여행도 두어 번씩 다녀왔습니다. 말로만 듣던 자가용을 굴리기도 했습니다. 노래방이 생겨서 삐삐발이를 불러 불루스도 실컷 췄습니다. ‘성개방시대’를 맞아 능력이 있거나 재수 좋은 친구들은 그 혜택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동기여러분,이제 환갑을 지내고 진갑을 맞으면서 어느덧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이제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저씨라고 불러주면 은근히 고마워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성질 급한 몇몇 동기들은 이미 유명을 달리했습니다.자랑스러운 동기 여러분,저는 오늘 엄숙한 마음으로 동기회장에 취임하고자 합니다. 저는 동기회장이 되는 게 일생 최대의 꿈이었습니다. 시내 출신 동기들과 부잣집 아들 친구들이 오래 전부터 동기회장을 지내는 동안, 세월이 흐르다보니 시골출신이자 돈도 없는 저에게 회장 자리가 돌아왔지만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60년 인생을 사는 동안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동기회장을 맡게 된 것은 더 없는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저의 아버지가 동네 이장을 지낸 이후로 반세기, 50년만에 제가 회장이 된 것은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동기회장이라는 영광스런 자리를 맡겨주신 동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이제 남은 것은 우리 동기회가 잘 되는 것뿐입니다. 동기라는 이름으로 만나서 정을 나누는 일도 실질적으로 10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동기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경주에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같은 학교에 다닌 소중한 인연입니다. 새삼스럽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남은 것만 해도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소중한 인연을 바탕으로 정을 나누고 서로 돕고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2년 동안 우리 동기들이 화합하고 단결하는 가운데 우정을 나누며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동기회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약속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동기간의 화합과 함께 정을 나누며 인생의 후반기를 맞아 ‘그래도 동기회가 있어서 좋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자랑스러운 동기 여러분, 앞으로 남은 인생, 동기들 간에 우정을 나누면서 멋지게 인생을 살아갑시다. 감사합니다.*이 글은 58년생 어느 고등학교 동기회장의 취임사를 일부 각색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