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인구 급감과 저출산의 여파로 초등학교 통폐합이 전국에서 속속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학교가 사라진 자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비는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와 주민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도심 내 폐교 예정지가 늘어나고 있는 경주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전국 폐교 3955곳…절반 이상은 여전히 방치2024년 현재 전국 폐교 수는 총 3,955곳에 달한다. 이 중 2,609곳은 매각됐으며, 979곳은 도서관·문화센터·체험관 등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367곳은 미활용 상태로 남아 있다. 활용률이 낮은 가장 큰 원인은 복잡한 법령 해석과 행정절차 때문이다. 특히 ‘공유재산법’과 ‘폐교활용법’이 적용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많은 지자체가 혼선을 겪었다.
이에 교육부와 행정안전부는 올해 4월 ‘폐교 재산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폐교 공포부터 매각·대부까지의 전 과정을 통합적으로 안내하고, 두 법령 간의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하면서 지자체가 보다 효율적으로 폐교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교육청과 지자체 간 협의를 촉진하고, 활용계획 수립과 도시관리계획 변경 절차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도록 하여 시간과 행정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됐다.경주시, 폐교 공간 활용해야…시민 생활SOC 복합시설로경주시 역시 최근 계림초, 월성초, 신라초, 화랑초 등 구도심 소규모 초등학교들의 통폐합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이들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중요한 지역 현안으로 부상했다. 특히 신라초 부지는 경주의 대표적 관광명소인 황리단길 초입에 위치해 있어 상징성과 활용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오 관련해 주낙영 경주시장은 이들 폐교 부지를 지하주차장, 공연장, 생활체육시설 등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며,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도시공간을 재편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폐교 활용에 대해 특별교부금 지원 의사를 밝힌 만큼, 정책적 동력도 충분한 상황이다.
경주시는 이와 함께 ‘작은학교+생활SOC 복합전환’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일부 교실은 계속 교육·돌봄 공간으로 유지하고, 나머지 부지는 도서관·문화센터·주민 커뮤니티 공간 등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단순한 기능 재배치를 넘어서, 학교라는 교육자산을 시민생활 공간으로 되살리는 접근이다.교육청-지자체 협업과 주민참여가 열쇠폐교 활용의 성패는 결국 협업에 달려 있다. 교육청은 폐교 재산의 소유권을 갖고 있으며, 지자체는 도시계획과 주민 복지를 책임진다. 양측이 긴밀히 협의해 지역의 특성과 시민의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또한 주민 참여는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닌, 실질적 공간 설계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시민 의견이 반영된 공간은 이용률이 높고, 지역 공동체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다. 특히 경주와 같이 역사와 문화적 자산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폐교 활용이 도시정체성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과제가 된다.
정부의 가이드라인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가이드라인은 ▲수의계약 대상 명확화 ▲무상대부 기준 완화 ▲활용계획 수립과 공표 동시 추진 등을 담고 있어, 기존의 행정적 장벽을 상당 부분 제거했다. 앞으로는 지자체가 교육청에 활용계획을 제출하고, 도시관리계획 변경까지 한꺼번에 진행함으로써 폐교 활용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을 전망이다.빈 교실은 끝이 아니라, 시민 삶의 시작점폐교는 단순한 건물의 유휴화가 아니라, 도시와 지역사회의 공간적·정서적 변화와 맞물린 중대한 과제다. 텅 빈 교실은 마을 도서관이 될 수 있고, 오래된 운동장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복합문화공간이나 청년 창업센터, 어르신 돌봄시설 등으로 활용된다면, 도심의 공동화도 극복할 수 있다.
특히 경주와 같은 역사문화도시는 폐교를 지역문화와 연결하는 공간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신라초의 경우, 황리단길 관광과 연계한 역사문화 체험센터나 야외공연장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계림초와 월성초 부지는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 또는 공공보건시설로 바뀔 수 있다.
결국, 사라지는 학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도시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이어진다. 학교의 기능은 멈췄지만, 그 공간은 여전히 도시의 중심에서 시민과 함께 숨 쉬어야 한다. 경주가 이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전국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종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