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수많은 고속열차들이 지나는 노선은 제각기 다르지만, 이 모든 열차가 빠짐없이 지나가는 단 하나의 역이 있다. 바로 경주역이다. 경주역은 2021년까지 `신경주역`으로 불리며 고속열차 전용역으로 사용되다가, 동해선 일반열차와의 통합 운영을 계기로 지금의 `경주역`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이 변화는 단순한 명칭의 변경을 넘어 경주라는 도시 철도 교통의 지형을 바꾸어 놓은 전환점이 되었다.
과거 경주의 철도 중심은 경주시내에 위치한 경주역이었다. 이곳은 동해남부선이 지나며 무궁화호 등 일반열차들이 정차하던 곳으로, 시내 접근성도 뛰어났다. 그러나 경주는 신라시대 수도였던 만큼 도심 곳곳에 중요한 문화재가 산재해 있었고, 철도 운영으로 인한 진동과 소음, 환경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철도 노선의 외곽 이설이 논의되었고, 결국 신경주역이라는 이름으로 외곽에 새로운 역이 세워졌다.
신경주역은 ‘경부고속철도(KTX)’의 계획 초기부터 검토된 역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문화재 보호 문제로 인해 위치 선정까지 수년간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경주 남산의 경관을 해치지 않고 사업비도 비교적 저렴한 지금의 위치로 결정되었다. 이 결정은 1997년 이루어졌으며, 당시부터 고속열차와 일반열차의 통합 운용이라는 청사진이 구상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은 쉽게 현실화되지 않았다. 동해선이 경주 외곽으로 이설되기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신경주역은 고속열차만 운영되는 역으로, 경주시내의 기존 경주역은 일반열차 전용으로 이원화된 구조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문화재와 철도 사이, 경주역 입지 결정의 오랜 역사KTX-이음, KTX-청룡, ITX-마음까지… 늘어나는 열차 종류하루 8,000명 이용하는 역사로 성장… 더 활기찬 경주역의 내일
전환점은 2021년 12월 28일, 동해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서 찾아왔다. 이때부터 동해선 일반열차들도 고속열차가 다니는 신경주역으로 통합되었고, 기존 시내 경주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동시에 신경주역의 이름도 경주역으로 변경되며 명실상부한 지역 철도의 중심역으로 재탄생하였다.
이제 이 경주역에서는 다양한 고속열차를 만나볼 수 있다. 기존의 KTX는 물론이고, 중앙선 KTX-이음, 동해선 KTX-이음, 그리고 최근 도입된 KTX-청룡까지 모두 이곳을 경유하거나 지나간다. 특히 KTX-이음은 동해선과 중앙선을 따라가는 독특한 노선을 가지고 있어, 기존 경부선과는 다른 경로로 서울과 부산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 경주역에서는 중앙선 KTX-이음이 하루 왕복 3회 운행되고 있으며, 향후 더 많은 편성이 도입될 예정이다.
KTX-청룡은 2024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최신 고속열차로,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정차역을 최소화하여 빠르게 운행되고 있다. 현재는 경주역을 정차하지 않고 통과만 하지만, 향후 수요 증가에 따라 정차 가능성도 열려 있다. 또한 2025년 1월부터는 강릉 방면 ITX-마음이 운행을 시작하면서, 경주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노선은 더욱 다양해졌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경주역의 이용객 수는 빠르게 증가했다. 과거에는 하루 평균 5,000명 내외의 승객이 이용했지만, 2024년 말 기준으로는 8,000명 이상이 이용하는 역으로 성장했다. 단순한 교통의 기능을 넘어서, 관광 중심지 경주의 관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승강장 배치 역시 이러한 변화에 맞춰 조정됐다. 과거에는 동해선 일반열차가 7·8번 승강장을 이용했지만, KTX와의 환승 편의를 위해 5·6번 승강장으로 조정되었다. 현재 7·8번 승강장은 사용되지 않고 있는 상태지만, 향후 열차 증가에 따라 재사용될 가능성도 있다.
경주역의 미래도 밝다. 동해선 KTX-이음의 본격적인 운행은 물론, 중앙선 KTX-이음의 증편, 그리고 KTX 청룡의 정차역 확대가 예정되어 있어 더 많은 열차들이 경주를 경유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수원, 인천 등 다양한 지역을 출발지로 하는 고속열차들도 경주를 잇는 행선지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5년 전만 하더라도 몇 종류 안되던 열차와 단순했던 행선지가 이제는 전국을 잇는 다양한 열차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경주역. 앞으로 이곳이 전국 철도 교통의 새로운 허브로 자리 잡을 날도 머지않았다.
문장수 경주역장은 “현재 경주역은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방문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APEC 정상회의의 첫 번째 사전회의인 제1차 고위관리회의 기간 셔틀버스 운행 경험과 개선사항, 관계기관 간 여러 차례 협의와 현장 점검을 통해 정상회의 기간 쾌적하고 신속한 교통편을 제공할 계획”이라며 “KTX 경주역을 수송 거점으로 지정되어 있는 만큼 이용객들의 안전하고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노후시설의 개보수와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경주역이 대한민국 고속열차의 중심이 되면서, 단순한 교통의 기능을 넘어 지역 경제와 관광산업에도 막대한 파급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경주역 통합 이후, 보문관광단지, 불국사, 석굴암 등 주요 관광지로의 접근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고, 그에 따라 국내외 관광객 수요도 함께 증가했다.
특히 KTX-이음의 도입은 수도권과 경북 동해안권을 더욱 긴밀하게 연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서울에서 경주까지의 소요 시간이 2시간 이내로 단축되면서, 당일치기 여행이나 주말 관광이 보다 활성화되었고, 이는 지역 소상공인들과 숙박·식음료 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과거보다 젊은 층의 유입도 많아졌으며, 특히 국내외 MZ세대를 겨냥한 맞춤형 관광 콘텐츠 개발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더 나아가 경주역 주변으로는 복합환승센터, 주거단지, 상업시설 등 개발계획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미 역세권을 중심으로 한 상업용 부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와 기업은 고속철도 수혜 지역으로서 경주의 입지를 높이 평가하며 투자 유치를 준비 중이다. 이는 경주가 단순한 역사문화도시에서, 철도 중심의 미래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경주역은 향후 국제적 교통 허브로의 발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정부의 고속철도망 확대 계획과 함께, 경북 동해안권과 부산항을 잇는 복합 물류체계 구축의 중심축으로서 경주역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동해선이 일본과의 해저터널 연결 논의와 연계될 경우, 경주는 동북아 물류·관광의 핵심 도시로 부상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결국 경주역은 단순히 열차가 정차하는 기차역을 넘어, 대한민국 고속철도 네트워크의 중심 거점이자, 경북 내륙과 동해안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속적인 노선 확대와 열차 편성 증가, 그리고 철도 중심 개발이 본격화된다면, 경주역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교통 허브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