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연일 “준비 이상 무”를 외치며 막바지 점검에 들어갔다. 지난 21일, 경주 힐튼호텔과 주요 현장에서 열린 언론인 대상 설명회는 이런 자신감을 대외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자리였다. 기자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그만큼 관심과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다.
첫 방문지는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 정상회의장으로 사용될 이곳은 공정률 60%대를 기록하며 한창 리모델링 중이었다. 진입로부터 재포장이 이어지고, 곳곳에는 안전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다. 작업자들의 구슬땀이 뜨거운 여름 공기와 뒤섞이며 현장 특유의 긴박감을 자아냈다. 수치로는 60%대지만, 눈으로 보는 공사 열기는 100%였다.
야외 전시장 부지에 들어선 국제미디어센터는 언론인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끌었다. 메인 브리핑룸과 기자실, 비즈니스 라운지가 조성 중이었고, 최신 무선 네트워크 장비가 설치되며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을 보여주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APEC은 정치무대이자 미디어 전쟁터”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국립경주박물관 마당에 들어선 만찬장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기초공사 단계였는데, 이제는 목조건축 특유의 웅장한 골조를 드러내며 빠른 변화를 보여줬다. 한 관계자는 “9월 중순이면 내부 마감공사까지 끝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정상회의 후에는 문화체험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하니, 이번 회의가 남길 ‘유산’ 가운데 하나가 될 듯하다.
APEC은 경제와 외교의 장이지만 동시에 문화외교의 무대이기도 하다. 경북도는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녹여낸 ‘3대 빅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월정교 일원에서 열릴 한복 패션쇼, 보문호반에서 펼쳐질 멀티미디어아트쇼, 그리고 K-POP 공연까지. 여기에 하회별신굿탈놀이 등 무형유산 공연도 줄줄이 예고됐다. 김학홍 경북도 행정부지사가 “제2의 한류를 경주에서 일으키겠다”고 자신 있게 말한 이유다.
문화는 때로 경제보다 강력한 외교 자산이 된다. 30년 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APEC에서도 지역의 전통문화 공연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경주가 준비하는 무대가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경주엑스포대공원에 조성 중인 경제 전시장도 눈길을 끌었다. 공정률 70%대에 이르는 이곳에서는 K-테크 쇼케이스가 열린다. 26개 경북 기업과 4개 국내 대기업이 참가해 수출 상담, 투자 포럼을 진행한다. 명실상부 ‘세일즈 경북’의 장이다. 회의가 단순한 외교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경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접점이다. 성공 여부에 따라 이번 APEC이 ‘문화외교’와 ‘경제외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갈린다.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귀빈들을 위한 숙소 준비도 속도를 내고 있다. PRS라 불리는 정상급 객실 35개는 9월 중 리모델링이 완료된다. 그러나 일부 준PRS룸을 둘러본 기자단의 반응은 엇갈렸다. “깔끔하지만 감동은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정상들이 머물 공간인 만큼, 세심한 감각과 환대가 필요해 보인다.
의료 체계는 철저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경북대병원이 핵심 의료지원 기관으로 지정돼 150병상을 확보했고, 동국대 경주병원은 응급의료센터를 확장했다. 구급차 50대, 의료 헬기 5대, 긴급차량 우선 신호시스템까지 마련돼 있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이런 준비가 곧 안전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APEC정상회의는 회의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남긴 인상으로 기억된다. 회의장에서 본 첨단 장비, 만찬장에서 맛본 한식, 호텔에서의 하룻밤, 거리에서 만난 시민의 미소까지 모두가 APEC의 경험이다. 작은 불편이 큰 흠이 되고, 작은 친절이 큰 감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