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가 다시 한 번 ‘원자력의 도시’라는 이름을 입증하려는 행보에 나섰다. 경상북도와 경주시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국가산업단지 조성 사업을 앞세워 수도권과 해외 기업을 상대로 투자 유치전에 돌입했다. 총 3,936억원을 투입해 2032년까지 113만㎡ 규모로 문무대왕면 일원에 조성될 SMR 국가산단은 혁신형 i-SMR 제조와 소재·부품·장비 집적화를 통한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한다.
SMR은 안전성과 경제성을 앞세워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는 시대적 요구와도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청사진도 실제 기업이 입주하지 않으면 껍데기에 불과하다. 경주가 글로벌 원전 산업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는 결국 기업 유치 성과에 달려 있다.
경주시는 이를 위해 지난 5월 주낙영 시장 명의로 국내외 670개 기업에 입주 제안 서한을 보냈다. 경주는 이미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월성원전, 문무대왕과학연구소, 중수로해체기술원 등 원자력 관련 기관이 집적해 있어 산업 생태계의 토대가 마련돼 있다. 특히 경주는 KTX와 고속도로, 공항과 항만으로 이어지는 교통망도 강점이다.
최근 서울 여의도 투자설명회에는 한화오션, 포스코E&C, GS건설 등 대기업과 100여 개 연구기관이 참석했다. 전문가들은 SMR 상용화 전략과 공급망 구축을 논의했으나, 기업들의 시선은 여전히 관망에 머물러 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지방정부가 직접 주도하는 모습은 긍정적이지만 구체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SMR을 국가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달성할 핵심 산업으로 규정하며 적극 투자 유치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수사만으로는 부족하다. 세제 혜택, 맞춤형 인허가, 전문 인력 양성, 정주 여건 개선 같은 실질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보다 ‘양적 유치’보다 ‘질적 집적’이 중요하다. 단순한 숫자 늘리기가 아니라, 원자로 설계·제조사, 핵심 부품 업체, 해체·재활용 기술 기업 등 핵심 주체를 모아야 시너지가 난다. 또한 지역 주민과의 공존은 필수다. 원자력 산업은 안전성·환경성에 대한 신뢰 없이는 지속 불가능하다. 월성원전 경험을 가진 경주일수록 지역사회와의 공감대를 넓히는 과정이 병행돼야 한다.
경주 SMR 국가산단은 포스트 APEC 시대를 대비한 투자 신호탄으로 불린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기업이 왜 경주여야 하는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이다. 강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부족한 부분은 정책으로 메우는 치밀한 전략이 요구된다.
SMR 산업은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다. 경주가 이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선, 산단 조성 속도와 기업 유치 실적 모두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경주 SMR 국가산단의 성공은 곧 경북,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 에너지 전략과 직결된다. 이제 공은 경주와 경북의 손에 쥐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