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지난 2월 내놓은 탄소중립 이행계획은 얼핏 보면 단단해 보인다. 2018년 배출량 240만6천tCO₂eq를 기준으로, 2030년에는 162만5천t, 2034년에는 158만2천t까지 낮추겠다는 수치가 적혀 있다. 또 ‘관리권한 외 추가 감축 노력’이라는 항목까지 별도로 설정해 총량을 줄이겠다고 했다. 형식적으론 분명 계획이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속도’와 ‘경로’가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연차별 감축 곡선이 지나치게 완만하다는 점이다. 2025년부터 2034년까지 매년 조금씩 줄어드는 수치만 제시됐을 뿐, 중간 점검에서 목표 달성이 어긋날 경우 어떤 보충 수단으로 메울지 대안이 없다. 흡수원을 포함한 순배출량 역시 2025년 169만t, 2030년 162만t, 2034년 158만t으로 천천히 내려가지만, 각 연도별 정책·예산·성과를 톤수 단위로 연결한 표가 공개되지 않았다. 계획은 있는데 실행 매뉴얼이 빠져 있는 셈이다.
부문별 배출 전망은 더 혼란스럽다. 건물은 2030년 –21.6%, 2034년 –24.8% 감축을 설정했지만, 수송 부문은 오히려 역행한다. 2030년 –10.7%p, 2034년 –16.5%p로 배출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문서 속 감축량 표에서는 2030년 1만6천t, 2034년 2만1천t의 감축을 수송에서 확보한다고 적혀 있다. 목표치에서는 늘어난다고 전제하고, 실행표에서는 가장 많이 줄인다고 가정하는 구조적 모순이다. 교통정책 강도가 법과 예산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종이 위 감축’으로 끝날 위험이 크다.조직 체계도 마찬가지다. 경주시는 부문별 소관부서를 지정하고,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설치해 심의와 의결을 맡긴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표성과 공개성 측면에서 부족하다. 회의 자료와 회의록 공개, 분기별 성과 점검, 시민·노동·청년·농민 등 직접적 당사자의 참여 보장은 보이지 않는다. 탄소중립 정책은 교통·주차·에너지 요금 등 일상과 직결되기 때문에 갈등을 관리하는 공개적 플랫폼이 필요하다.
결국 경주가 풀어야 할 과제는 세 가지다. 첫째, 목표치와 실행표 사이 불일치를 해소하는 정합성 복원이다. 둘째, 건물·폐기물보다 수송에서 실질적 감축이 가능하도록 세부 KPI를 정량화해야 한다. 셋째, 예산-과제-톤수를 연결한 ‘톤수 예산표’를 시민 앞에 공개해 감시와 참여를 가능케 해야 한다. 숫자는 준비됐지만 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경주의 탄소중립이 선언에 그칠지, 실행으로 이어질지는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