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현곡보건지소의 아침은 유난히 활기차다. 운동복 차림의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손을 잡고 안부를 묻는다. 이들은 “내가 건강해야 이웃도 건강하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경주시보건소의 돌봄 프로그램을 받던 대상자였던 것이 이제 이웃의 건강을 살피는 ‘시니어 건강리더’로 변신했다.     ‘위드케어 경주’는 초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경주시보건소가 추진 중인 통합형 건강돌봄 모델이다. 이 사업의 핵심은 ‘돌봄의 주체가 주민 자신’이라는 점이다. 경주시는 “어르신이 살던 곳에서 건강하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지역공동체 실현”을 목표로, 12개 보건지소를 중심으로 한 통합돌봄 체계를 구축했다.     보건소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니어 건강리더가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보건지소가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주민주도형 모델이다. 치매안심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시니어클럽 등 다양한 기관이 참여해 촘촘한 돌봄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현재 경주시는 2026년까지 8만명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건강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12개 읍면 지역에서 약 3,600명의 어르신이 참여했다. 걷기·스트레칭·혈압체크 등 신체활동뿐 아니라 정서상담, 치매예방 놀이, 건강교육이 함께 진행되며, 주민 간의 연결과 소통이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다.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시니어 건강리더’가 있다. 50세 이상 시민이 대상이며, 68시간에 걸친 이론·실습 교육을 거쳐 활동 자격을 얻는다. 교육을 수료한 리더는 마을로 돌아가 이웃을 찾아가고, 함께 걷기 운동을 하며 건강체크와 정서지원을 병행한다. 이들은 단순한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지역의 건강문화를 만들어가는 ‘생활 속 지도자’다.   이들이 꾸린 자조모임 ‘건강동아리 함께동무’는 지역 공동체의 새로운 활력소로 떠올랐다. 회원들은 마을회관이나 공원에서 매주 모여 함께 운동하고, 건강정보를 공유한다. 연간 400회가 넘는 프로그램이 자발적으로 운영되며 참여자만 3,000여 명에 이른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건강해지니 이웃도 웃는 게 좋다”는 한 건강리더의 말은 이 사업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위드케어 경주’의 또 다른 특징은 신체건강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주요 프로그램은 네 가지로 나뉜다. △‘건강동행’은 건강리더가 이웃을 방문해 건강체크와 정서지원을 수행하는 활동이고, △‘함께동무’는 마을 단위 건강동아리를 중심으로 걷기·치매예방·실내운동 등을 함께한다. △‘다시, 봄날’ 프로그램은 어르신이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의미를 되찾는 회상활동으로, 노년 우울감 완화에 효과가 크다. △마지막으로 ‘건강리더 역량강화’는 정기 교육과 세미나를 통해 지도자로서의 전문성을 높이는 과정이다.   회상프로그램에서는 어르신들이 청년 시절 사진을 가져와 추억을 나누고, 생애주기를 긍정적으로 돌아보는 웰다잉(Well-dying) 강좌도 함께 진행된다.     보건소 관계자는 “건강리더 한 명이 10명의 어르신을 돌보는 셈이어서, 지역 전체의 건강관리망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며 “이들이야말로 지역 복지의 살아있는 인프라”라고 평가했다. 실제 참여 어르신들의 건강습관 개선률과 우울감 감소율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으로 조사됐다. 고립된 독거노인이 지역사회로 다시 연결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경주시는 사업을 지속가능한 모델로 확산하기 위해 내년 11월 ‘시니어 건강리더 전문성 인증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자격 기반의 보상체계를 마련해 장기 활동을 유도하고, ‘보건지소 중심 통합건강·돌봄 서비스’ 체계를 행정정책에 반영할 방침이다. 다만 건강리더의 지속교육과 참여 유인, 보상제도의 현실화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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