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기초자치단체장 선거는 여전히 중앙정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핵심에는 정당공천제가 있다. 정당공천은 제도 도입 이후 지방행정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중앙정당 중심의 정치 구조를 지방에 그대로 투사했다. 특히 공천헌금, 하향식 공천, 지역주의가 결합하면서 기초단체장 선거가 부패의 온상이 되었다는 비판이 누적되어 왔다. 실제 연구에서도 기초단체장 부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왜곡된 공천제도’가 지목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공천이 지역 주민의 선택보다 더 큰 힘을 갖는 구조에 있다. 특정 정당이 절대적 우위를 점한 지역에서는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이 작동하고, 후보들은 주민보다 정당과 국회의원 눈치를 보는 정치 행태에 익숙해졌다. 이 과정에서 공천헌금이 활성화되고, 능력 있는 전문가보다 정치적 충성도가 높은 후보가 공천을 받는 왜곡이 반복된다. 단체장들이 “임기 동안 적립 가능한 돈보다 선거비용과 공천 비용이 훨씬 크다”고 토로한 면접 조사 결과는 이 구조적 문제를 잘 보여준다.
여론 역시 변화하고 있다. 논문 분석에 따르면 전문가·지방의원·단체장을 포함해 70~80%가 정당공천 폐지에 찬성하며, 일반 국민 역시 절반 이상이 폐지를 선호한다. 특히 기초단체장은 80% 이상이 폐지를 지지할 만큼 현장 체감도가 높다. 반면 국회의원은 절반 이상이 유지 의견을 내며, 공천 구조로부터 비롯되는 기득권을 내려놓기 어렵다는 정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당공천제가 가진 장점도 존재한다. 정당은 후보 난립을 막고 검증 기능을 수행하며, 여성·청년 정치 참여 확대에도 기여해 왔다. 그러나 한국 정치문화에서는 이러한 장점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오히려 중앙정치의 지방 지배, 금권 공천, 후보 경쟁의 약화 등 부작용이 훨씬 크게 나타나고 있다. 지방자치의 목표가 주민 중심의 정책 결정에 있음에도, 실제 선거는 정당 이미지와 중앙정치 구도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이 지속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제도의 단순한 존폐 논쟁을 넘어 지방자치를 정상화하기 위한 구조 개혁이다. 논문은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부패 정치인을 공천한 정당의 재공천 금지 등 책임정치 강화, ▲정당 규모에 따른 기호 배정 관행 개편, ▲공천 과정의 투명한 공개와 금권 공천 차단, ▲상향식 경선제 도입을 통한 공정한 경쟁, ▲주민의 성숙한 참여 의식 확대 등이다.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논쟁은 단순히 선거제도 하나를 고치는 문제를 넘어 ‘어떤 지방자치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지방정치는 주민과 가장 가까운 생활 정치여야 하며, 정당이 그 영역을 과도하게 점유할 이유는 없다.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의 하부구조가 아닌 지역 민주주의의 실질적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공천 구조를 둘러싼 기득권과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지금이 그 전환의 시점이다.
글 김장하(전 경상북도 명예 감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