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소형모듈원전(SMR) 1호기 유치를 위해 경주가 전면에 나서며 본격적인 경쟁 구도에 돌입했다. 경주는 지난 수십 년간 원전 운영 경험을 축적해 온 도시이자, 월성원전을 중심으로 형성된 인프라와 주민 수용성을 강점으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여건은 SMR 도입을 추진하는 정부 정책과 맞물려 경주가 유력 후보지로 급부상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그러나 유치전이 과열되기 전에, 국가 에너지 정책의 철학과 지역 공감대 형성이라는 더 큰 원칙을 놓쳐서는 안 된다.
경북도는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산·학·연·관 전문가 들이 참여한 ‘경주 SMR 건설부지 유치지원 자문회의’를 열어 유치 전략을 점검했다. 철강산업의 대전환, 수소 기반 제조업 확장 등 국가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탄소 전력과 청정수소 확보가 필수적이며, 현 시점에서 SMR이 가장 실현 가능한 대안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문무대왕과학연구소 개원, 반경 5km 이내 국가산업단지 조성, 한수원 본사와 방폐장 등 기존 인프라 역시 경주가 가진 압도적 경쟁력으로 거론됐다.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주민 수용성’이다. 에너지 시설은 기술력만큼이나 주민 이해와 사회적 신뢰가 중요하다. 월성원전을 40년간 운영해 오면서 경주 시민들이 보여준 안정적 수용성은 다른 지자체가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자산이다. SMR 유치 경쟁이 본격화될수록 이 요인은 결정적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철강업계가 SMR 유치를 반기는 분위기도 단순한 산업 논리가 아니다. 국내 철강기업들은 수소환원제철 전환이라는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탄소중립 목표가 갈수록 강화되는 국제 환경에서, 대규모 청정에너지 공급 없이는 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포스코홀딩스를 비롯한 업계가 “SMR이 가장 유력한 대안”이라고 밝힌 이유다. SMR 유치는 특정 지역의 이익을 넘어 국가 제조업 경쟁력과 직결되는 사안이 되고 있다.
그러나 흥행 경쟁처럼 치러지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SMR은 단지 새로운 발전기술이 아니라, 향후 수십 년간 국가 에너지 시스템의 방향을 결정할 중대한 선택이다. 소형모듈원전의 경제성·안전성·규제체계·사용후핵연료 정책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정부가 부지 선정에 앞서 이 부분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지자체는 장기 계획과 위험·편익 분석을 주민에게 정직하게 전달해야 한다. 경주가 아무리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해도 ‘유치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주는 원전 인프라가 집적된 지역인 만큼, SMR이 기존 체계와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도 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과정은 경쟁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미 경북도와 경주시는 TF팀을 중심으로 정부 설득과 여론 형성에 나서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경주의 유치 논리가 타 지역보다 앞선 이유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일이다. SMR은 지역 간 발전량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산업 전환을 현실화할 에너지 기반이기 때문이다.
SMR 1호기 유치전은 결국 경주만의 경쟁이 아니다. 한국이 에너지 전환 시대를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 지역과 국가는 어떤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하는가를 묻는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