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꿈은 이루어지는가?본사는 일본의 도쿄, 지사는 일본에 3개(오사카, 나고야, 나리타), 중국에 3개(대련, 천진, 상해), 한국에 2개(서울, 부산), 대리점은 전 세계 100여개, 국제물류, IT/CT, 무역, 유통, 제조업 등 법인 5개, 해외연락사무소 2개. 회사설립 10년만에 직원 200여명, 연매출 1000억원대. (주)코나폰 코프레이션의 회사규모다. 고향 경주에서 좋은 일도 많이 한다. 이 회사의 대표는 최상원. 그는 1966년생이다. 내남중과 신라고를 나왔다. 1990년 일본으로 유학가서 온갖 알바를 하다가 3년만에 이삿짐센터를 차리고 이어 중국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2014년 발행한 그의 책 「검정고무신의 초심 멘토링 7.0」을 보자. ‘사람들의 시선이나 힐끌거림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단지 비장한 각오만 있을 뿐이다. 배웅나온 가족들과 친구들이 오히려 민망해 했다. 김해국제공항에서 검정고무신에 밀짚모자를 쓰고 탑승하는 젊은이는 나밖에 없었다. 군대 다녀와서 1년 반동안 준비한 유학이었다. 얼마나 준비하고 기다렸던 날인가? 처음으로 타보는 비행기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는 유학길이었다.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약간 긴장되고 있었다.’ ‘어린시절 공부에 취미가 없어 항상 중간쯤에서 놀았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두 번이나 낙방해 열등감에 시달렸다. 돈 벌겠다고 가출도 했다.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랬던 내가 경주시민을 초청하는 문화행사를 주최하는 날이 올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2014년 10월 <경주시민을 위한 가을밤의 음악산책-필자 주> ‘경주시내에 있는 숯불갈비집에서도 일했다. 숯불을 지펴 손님방에 세팅을 하거나 불판을 닦는 일이었다. 불판을 닦는 일은 씨름이나 다름 없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불쑥 찾아오셨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있는 것을 모르고 머리에 무엇을 이고 오신 것을 팔러 오신 모양이었다. 서로 깜짝 놀랐다.’ ‘경주 황성공원 근처의 주유소에서도 일했다. 주유원으로 숙박하면서 배달도 나가고 주유도 했다. 커피숖, 스탠드바, 룸싸롱 등 뭔지도 모르고 일했다. 아랫시장에서 친구와 함께 수박장사를 했다. 내 역할은 수박사세요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동경에서 불법택시를 했다. 3년만에 동경의 골목 깊숙한 곳까지 알게 됐다. 이게 큰 자산이 됐다. 나중에 이삿짐센터를 운영했으니까.’ ‘중학교 때 텔레비전을 즐겨봤다. 그것도 광고를 많이 봤다. 특히 9시 뉴스 시간대의 광고가 비싸다는 말을 듣고 더 관심이 많이 갔다. 나도 나중에 커서 9시 황금뉴스 시간대의 광고를 내봐야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자주 했다. 그 꿈은 아직도 이루지 못했으니 여전히 유효한 꿈이다. 황금시간대에 우리 회사의 광고를 낼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재수를 했는데도 또다시 낙방했다. 화가 나신 아버지는 점수를 확인하고 오셔서 3점 차이로 떨어졌다고 혼내셨다. 마침 외사촌 누나가 찾아와 막아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낙방은 내 자신의 열등감을 증폭시켰다. 살고 싶지 않았다. 왜 살아야하는지....’ ‘어머니는 1전도 금전이라며 검소하게 살라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고, 아버지는 남에게 해로운 사람은 되지 말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가르침은 상속 없이 물려받은 재산이다.’ ‘가장 다행스러운 것은 일본을 먼저 만난 것이다. 일본인의 꼼꼼하고 원리원칙적인 성향과 배려심을 먼저 배우고 나서, 중국의 넓고 여유로운 대륙 마인드가 더해진 것이 내 인생의 플러스가 됐다.’ ‘나는 내남중학교 30회 졸업생이다. 중학교 시절 가장 존경스러운 선생님과 가장 싫어하던 선생님이 같은 분이다. 사리분별을 제대로 잘하도록 가르쳐주신 김윤근 선생님이시다. 과학 선생님이셨는데, 열정이 넘치시는 분이라 기대에 못미치면 자주 매를 드셨다. 매를 가장 많이 맞았는데도 가장 기억에 남아 가장 존경하게 되다니 아이러니다.’ ‘나에게 고향은 한국, 일본, 중국 세곳이다. 한국에서는 인간 최상원이 태어났고, 일본에서는 성숙했으며, 중국에서는 단련되었다.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 세계의 모든 나라에 지사를 만들어 문자 그대로 글로벌한 회사로 키우는 것이다. 나의 최종목표는 (주)코나폰을 전 세계인들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이리저리 궁리한다. 대한민국과 아시아 뿐만아니라 전 인류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나는 평소 대학진학보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이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국가에서 교육정책을 빠르게 바꿀수록 이익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