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소년등과(少年登科) 우병우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고사성어(故事成語)의 기원은 중국이다. 어원을 가만히 살펴보면 인간사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내용이 많다. 삶의 지혜와 이치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사례와 경험에 근거한 여러 고사성어 외에 출처가 분명치 않은 세 가지의 고사성어가 최근 여러 글에서 자주 인용된다. 소년등과(少年登科), 중년상처(中年喪妻), 말년궁핍(末年窮乏)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출세하면 교만과 독선, 아집에 빠져 중년 이후에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게 소년등과, 어떤 연유든 한창 활동해야 할 중년의 나이에 배우자를 잃으면 가정도 그렇거니와 일신이 곤고하다는 게 중년상처요, 말년에 이르러 돈이 없으면 인생이 고달프다는 게 노년궁핍이다. 인생에서 피해야할 세 가지 악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남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필자가 우매한 탓인지 아무리 찾아봐도 출처를 알 수 없다. 책에 있는 말이 아니라 5천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민중들의 지혜가 농축된 게 아닐까 싶다.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중년신앙(中年信仰)이나 황혼이혼(黃昏離婚)을 추가하기도 한다.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친구를 만나야 할 중년에 그리하지 못하고 종교에 빠지는 것도 불행의 단초이며, 노년에 이혼하는 것도 말년을 고달프고 쓸쓸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년등과(少年登科)는 분명한 출처가 있다. 북송 당시 유명한 유학자였던 정이천(程伊川.1033-1107)의 글 중에 “젊었을 때 고과(高科)에 오르는 것이 첫 번째 불행이요, 부형(父兄)의 후광(後光)으로 미관(美官)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두 번째 불행이요, 재주가 많은데다 문장까지 좋은 게 세 번째 불행이다.”라고 적고 있다. 소년등과는 이 글에서 유래한 듯하다. 소년출세(少年出世)라 부르기도 한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봉화군에서 태어나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다. 대학 2학년, 만 20세 약관의 나이에 사법고시에 패스, 고도 근시로 군대까지 면제받고 26세의 나이에 사람들이 영감님이라고 부르는 검사가 된다. 이른바 강남의 부잣집에 장가도 갔다. 서울지검에 근무하다가 1992년 경주지청에 1년여간 근무했는데, 당시를 기억하는 몇몇 사람들은 검사 초년병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치밀하고 오만했다고 기억한다. 김일윤 전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던 원석학원 회계부정 사건으로 불려간 김 모씨의 증언에 의하면 검사실에 들어가니 즉시 앙칼진 목소로 ‘대가리 박아(군대 용어로 원산폭격)’라고 일갈하더니, 이어서 ‘쪼그려 뛰기’까지 시키더란다. 군대도 안간 사람이 군대를 다녀온, 그것도 자기보다 열 두살이나 많은 사람을 마치 졸병처럼 다루었다는 것. 당시 김 전의원의 영향력이 작용했는지 사건은 유야무야 경미한 처벌로 사건이 마무리됐다고 한다. 우병우는 이때 권력과 돈의 위력을 실감했는지도 모른다. 당시 규모가 큰 건설업을 하고 있던 박 모씨는 시장.군수에게 수억원의 뇌물을 건냈다는 투서에 걸려 역시 우병우에게 붙들려 갔다. 용의주도하고 매몰찬 수사기법에 지금도 혀를 휘두른다. 나름대로 마당발이었던 박 모씨는 수감 97만에 결국 혐의를 벗고 나오는 자리에서, 수사 중에 잘 봐달라고 청탁전화를 걸어온 유력인사들의 명단을 보여주며 “당신 백 좋구만” 하더란다. 경주의 부자로 널리 알려진 모 씨도 우병우에게 걸려들어 고생 좀 했다. 우병우가 권력의 힘을 결정적으로 실감한 사건은 아마도 포항의 재벌 황 모씨 사건인지도 모른다. 초임검사로서의 열정과 의욕에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황 모씨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대어(?)를 낚고자 했던 우병우는 그러나 밀양지청으로 날려가야만 하는 수모를 당한다. 소문에는 포항의 황 모씨가 대통령 민정수석을 움직여 수사를 중단시키고 아울러 인사이동까지 시켜버렸다고 한다. 우병우는 필시 이 사건으로 권력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반드시 민정수석이 되어야 겠다는 꿈을 키웠지 모를 일이다. 우병우는 민정수석에 의해 날려간지 23년만에 마침내 민정수석이 된다. 만 48세 때다. 소년등과(少年登科)했던 우병우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앞으로 검찰이나 특검의 칼날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아닐 것이다. 살아갈 날이 많고 시가로 치면 1천억에 이르는 재산을 갖고 있어 사는 데 큰 지장이야 없겠지만 권력과 명예까지 갖기는 어려울 것 같다. 곳곳에 측근을 심어 놓았다고 하지만 그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손해를 감당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국민들도 그의 이름을 쉬 잊지는 않을 것이다. 화려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숨어사는 50대 부자로 살는지 아니면 자신이 집어넣기만 하던 감옥에 몇 년 살아야 하는지 궁금하다. 국가 원로들과의 만남에서 “내가 뭘 잘못했는가요?”라고 했던 박 대통령처럼 평상시 우병우는 “내가 법적으로 뭘 잘못했습니까? 라던 우병우다. 너무 빨리 높은 자리에 오르면 조심해야 하는가 보다. 주위의 타캣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속담에 ‘사람은 유명해지지 말고 돼지는 살찌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유명해지면 시기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돼지가 쌀이 찌면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양에서는 ‘올라갈 때 옆 사람을 보라. 내려올 때 다 만날 사람이다.’라는 속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