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죽음을 알아야 삶을 안다올해 경주시 보건소장으로 취임한 김여환 소장은 대구의료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800여명이 넘는 환자에게 죽음 판정을 내린 경험이 있는 이 계통에서는 꽤 알려진 의사다. <죽기전에 더 늦기 전에> 등 몇 권의 책도 냈다. 남편도 의사고 자녀 둘도 의대에 다닌다. 의대를 졸업하고 13년간 가정주부로 살다가 뒤늦게 공부를 하여 전문의가 된 드문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김 소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우리가 한 번은 가야할 죽음을 더 늦기 전에 알아야 한다’며 죽음을 알면 삶이 달라진다고 적고 있다. 중세 수도원 수사들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서로 인사를 했단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망각하고 살기 때문에 일어나는 가치관이나 정체성의 혼란이 많다는 것이다. 김 소장이 호스피스 병동의 의사 시절 인터뷰 내용의 일부를 인용해 보자. 문:통상 시한부 판정을 받을 때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답:환자의 마음 속에서 그런 다섯가지 단계가 왔다갔다 한다. 하루에도 밀물썰물이 교차하는 것처럼. 하지만 대부분 환자들은 마지막까지도 ‘나는 살아날 것이다’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문:죽음 직전에 가족에게 주로 어떤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나? 답:병상에서 유언을 하는 것은 가상의 드라마다. 그런 일은 없다. 혀를 움직이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임종 단계에 이른 환자들은 혀를 거의 움직일 수 없다. 문:숨 넘어가지 직전의 유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답:내 경력이 짧아서 그런지 이 병동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죽어가는 환자는 말 할 수 없어도 다 들린다. 귀는 끝까지 살아 있다. 그래서 평소에 잘 듣는 음악을 들려주거나 좋은 말을 해 준다. 자녀가 ‘엄마 때문에 너무 행복했다’는 얘기를 하면 환자의 표정이 달라진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죽어가는 환자는 말을 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숨을 내쉬고 죽는다. 따라서 살아 생전에, 정신이 조금이라도 온전할 때 유언을 해야 한다. 물론, 정상적일 때 자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재산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 법적 장치를 해주면 더욱 좋다. 임종 직전에는 말할 힘도 없이 그냥 숨을 멈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하나는 임종 직전에 숨이 끊어지면 사망으로 판단하지만 청력은 금방 끊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행복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영혼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귀에다 대고 좋은 말을 해주는 게 좋다는 것이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 등이다.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좋다. 죽음을 옆에서 직접 경험하면서 느낀 의사의 소회이니만큼 깊이 생각해 볼만하다. 잘 산다는 것은 어쩌면 잘 죽기 위한 준비과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