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질투 이야기
러시아의 이야기란다. 평소에 선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사람이 또 좋은 일을 하여 神(신)을 기쁘게 했다. 를 갸륵하게 여긴 신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들어 주겠다. 소원을 말해보라.” 그런데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이 선한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던 옆집 사람에게는 자기가 받는 양의 두 배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자신이 황금 열냥을 받으면 옆집 사람에게는 스무냥이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선한 사람은 옆집 사람이 잘되는 꼴은 죽어도 못보겠던터. 곰곰이 생각하던 이 선한 사람은 신에게 소원을 말했다. “내 한쪽 눈을 빼주시오.” 옆집 사람은 할 수 없이 두 눈을 빼야 했다.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남녀였던 아담과 이브는 질투를 느꼈을까? 한 랍비가 의문을 던지자 긴 토론 끝에 결론이 났다. “이브는 질투를 느꼈을 것이다. 질투가 따르지 않는 사랑은 있을 수 없으며, 질투하지 않는 여성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담이 집에 돌아오면 이브는 언제나 아담의 갈비뼈 개수를 셋을 것이다. 탈무드에 있는 말이다. ‘사촌이 논사면 배 아프다’는 우리나라의 속담도 괜히 생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류학자나 사회학자들은 대체로 질투가 인간의 본능 중에 하나라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특히 동기간, 친구간에 이 질투의 감정이 많음을 느낄 수 있다. 동물도 예외가 아니라는 학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 질투의 감정에서 파생된 현상의 하나가 서열문화다. 특히 동양문화에서 많다. 선후배간에는 이미 서열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굳이 서열을 두고 타툴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동기간에는 은연중에 서열을 가려 앞서려는 감정이 많다. 언젠가 화백포럼에서 윤생진이라는 강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일본에서는 2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지만 한국에는 한 명밖에 없는 이유가 질투심 때문이다.” 좀 지나친 해석이라고 쳐도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질투하면 벌써 지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기형도 시인은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했지만 좋은 뜻으로는 경쟁심리가 되어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여하튼 다가오는 겨울을 맞아 질투보다는 축복하는 삶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