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백수의 왕 호랑이“깊은 산 속에서는 백수의 왕인 호랑이도 우리 속에 갇히게 되면 꼬리를 흔들며 먹이를 구걸하게 됩니다. 협박당하고 고통을 받은 결과가 그러한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손발이 묶이고 벌거벗겨져 채찍을 맞고 감옥에 처박히면 옥리만 보아도 머리를 땅에 박고 잡역부에게조차 겁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불후의 명저 『사기(史記)』를 편찬한 사마천이 ‘임안’이라는 장군에게 쓴 편지에 실려 있는 대목이다. 뒤이어 사마천은 “용기가 있다거나 비겁하다는 것도 사실은 상황의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라는 말도 나온다. 최근 ‘뉴스타파’라는 매체를 통해 들은 이야기. 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5공 시절 강원도의 어느 40대 아줌마가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는데 수사관이 짬뽕을 시켜주면서 건더기만 먹으라고 하더란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고개를 젖히고는 남은 짬뽕 국물을 코로 마구 쏟아붓더라는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더란다. 물론 전기고문 등 여러 가지 고문도 당했는데 가장 고통스러운 고문은 옆방에서 들리는 가족의 비명소리였단다. 고문기술자들의 전략이었다. 끔찍한 고통을 당하지 못해 수사관이 불러주는 대로 모조리 인정을 했단다. 상황이 인간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구 소련의 어느 고문기술자는 “고문만 하게 해주면 공산주의자도 민주주의자로 만들 수 있고 민주주의자도 공산주의자로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한 적이 있다.인간정신이 위대하다고 외치는 수많은 스승, 현자가 있지만 상황이 바뀌어 극심한 고문을 받고 생각을 바꾸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유감스럽게도 나는 사마천의 말대로 거의 대부분 우리 속에 갇힌 호랑이처럼 비굴하고 비겁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살아남아야겠다는 본능과 육체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정신은 벌써 허물어지고 ‘리차드 도킨스’의 이론처럼 생존본능의 세포가 시키는 대로 변한다. (예외가 있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려고 순교하는 경우다. 다른 세상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는 경우다.) 사마천의 이야기는 인간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그러면 상황은 뭘까? 첫째가 생존(生存)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먹이가 최우선. 먹이는 돈으로 살 수 있다. 돈은 곧 이익(利益)이다. 사람은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대부분. 내 남 할 것 없이 이익에 따라 움직이지만 너무 심하다 할 정도의 경우를 보면 안쓰럽다. 적당히 해야 된다. 과하면 구설에 오르고 병에 걸리거나 감옥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