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졸 음장자(莊子)의 아내가 죽었다. 친구였던 혜시(惠施)가 문상을 갔더니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누라가 죽었는데 장단을 맞추며 노래를 부르다니 너무 한 게 아니냐고 따져 물렀다. 왜 슬픔이 없겠느냐며 곡을 멈추고 슬픔을 거둬들인 까닭을 장자는 이렇게 밝혔다.“삶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본래 삶이란 없다. 그저 허공을 떠돌던 기(氣)가 모여서 형체를 만들고 그 형체가 삶을 갖춘 게 불과하다. 죽음이라는 것은 모였던 기가 다시 흩어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생로병사가 춘하추동이 반복되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그렇게 통곡할 일이 뭐 있겠는가?” 많이 인용되지만 기록에 있는 말이 아니고 일화로 전해지는 이야기다. 일화가 2천년 지난 지금까지 전해지다니 신기하다.장자의 죽음이 임박하여 제자들이 성대한 장례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자 장자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냥 들판에 시체를 갖다 버려라”라고 말했다. 제자들이 “그러면 온갖 짐승과 새들이 선생님의 시체를 뜯어먹을” 거라며 그럴 수 없다고 하자 장자는 “땅속에 묻으면 개미와 벌레가 뜯어먹을 텐데 마찬가지가 아니냐”며 일언지하에 정리했다. 역시 일화다.시조시인이자 <벽암록>을 새로 정리한 것으로 유명한 오련스님이 2005년 <세계평화시인대회> 만찬장에서 즉석으로 시조를 읊었다.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어차피 한 마리의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유서 내용에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라는 말을 남겼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10주기 전날 모친상을 당한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이 추도식에 불참하면서 그의 펜클럽인 <시민광장>에 글을 남겼다.어머니의 별세에 대하여안녕하세요. 회원 여러분.제 어머니가 여든 아홉해를 살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어머니는 병상에 계셨던 지난 2년 반 동안,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여러차례 표현하셨습니다.다시는 목소리를 듣고 손을 잡을 수 없게 된 것은 아쉽지만,저는 어머니의 죽음이 애통하지 않습니다.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담담하게 보내드렸습니다.조문을 가야할까, 생각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저를 위로하러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슬프거나 아프지 않으니까요.제 어머니를 생전에 아셨고, 꼭 작별인사를 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굳이 오시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그러나 마음속으로 ‘서동필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해 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그래도 꼭 오시겠다면, 꽃이나 조의금은 정중하게 사양하기로 저희 6남매가 의견을 모았다는 점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간단한 다과를 준비했으니 함께 나누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사유할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위로 말씀과 마음의 인사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우리는 우리들 각자의 삶을 의미있게 꾸려나가기로 합시다.유시민 드림<김지수의 인터스텔라 24>에서 20년간 1,500구의 시체를 부검했다는 유성호 법의학 교수는 “우리 육체는 대게 어떤 과정을 거쳐 죽나?”라는 질문에 “생의 말기적 증상이 있다. 통증이 있고 피곤하고 입이 마르고 손발이 저리고 가려움증이 있다. 가장 많이 겪는 징후는 졸음이다. 계속 깨워도 졸고 꼬집어도 반응이 없으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사망에 이른다. 그런데 노인분들 앞에서는 절대 이런 말을 안 한다. 내가 죽을 때가 다된 거냐고 화를 내신다.” 죽기 직전에 졸음이 쏟아진다는 게 신기하다는 질문에는 “뇌의 각성이 떨어지는 게 원인이다. 점차 뇌의 활동이 꺼져 코마 상태에 이른다.”고 대답했다. 인간은 죽을 때 졸다가 죽는 모양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고로 인해 혼수상태가 되었을 때 졸면 안 된다고 얼굴을 꼬집고 때리고 하는 이유다. 졸면 죽는다고 한다. 칠불암 회주 월암 스님에게 들었다. 죽을 때 ‘나무아미타불’을 외기란 지극히 어렵다고. 마지막으로 김지수 씨가 물었다.“품위 있는 죽음이란 무엇인가?”“태어날 때 축복받고 웃는 것처럼 죽을 때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즐겁게 마무리하는 거다. 급작스럽게 죽을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하고, 주변에 ‘사랑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하면서.”‘죽음의 의사’로 알려진 미국의 병리학자 잭 키보키언은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말기 암환자를 대상으로 품위 있는 죽음, 즉 존엄사를 위하여 환자에게 수면제와 독약이 든 기계의 단추만 살짝 누르기만 하면 편안한고 안락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도 이런 사실을 충분히 인정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 단추를 누른 환자는 40%밖에 되지 않더란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죽음보다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고통스러운 삶을 선택하더라는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더니 살아있음에 대한 집착이 참 질기고 모질다. 活狗子 勝於死政丞(살아있는 개자식이 죽은 정승보다 낫다) 의미 있게 살다가 즐겁게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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