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사랑과 어머니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이 뽑은 가장 한국어는 ‘사랑’이란다. 전 세계 60개국 180곳 학생 1228명을 대상으로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를 물은 결과다. “한국어로 발음했을 때 소리가 우아하고 섬세하다” “사람과 사랑이 한 글자 차이로 비슷하게 생겼다. 사람은 사랑을 위한 존재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음성적으로 ㄱ,ㄷ 같은 막힌 소리보다는 ㅅ,ㅇ 같은 울림소리가 듣기 좋고 특히 ㄹ은 소리가 끊기지 않고 지속된다”면서 “우리말엔 삶, 서로, 설레다처럼 ㅅ과 ㄹ이 들어가는 말이 아름답다는 조현용 경희대학교 교수의 설명도 곁들였다. 한글날 조선일보에 나온 기사다. ‘사랑’은 ㅅ과 ㄹ과 ㅇ이 동시에 들어가 있다. 듣기로는 프랑스 말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인 이유이기도 하다. 기사에 의하면 사랑 다음으로 ‘안녕’이 2위로 뽑혔고 이어 ‘아름답다’와 ‘별’이 각각 3위와 4위에 선정되었다. ‘안녕’은 발음할 때 소리가 예쁘서,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모두 쓸 수 있어서가 2위로 뽑힌 이유였고, 다음으로 ‘아름답다’는 한국의 자연과 사람, 음식, 날씨가 연상되어서라는 이유였다. ‘별’은 한 음절이라는 이유와 아름답게 들린다는 이유로 뽑혔단다. 가장 아름다운 한국어 선정은 단어의 의미도 포함되지만 주로 듣기에 좋거나 연상되는 감성 위주로 선정된 듯하다. 이밖에 ‘봄, 대박, 열공, 아이고, 어떻게’ 등 재미있는 말도 적어냈단다. 그런데 ‘어머니’나 ‘엄마’는 순위에 들지 못했다. 의아스럽다.영국문화원이 2004년도에 비영어권 102개 나라 4만여명을 상대로 영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단어) 100개가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했는데 Mother(어머니)가 단연 1위였다. 10위까지만 보자. 2위는 Passion(열정), 3위는 Smile(미소), Love(사랑), Eternity(영원), Fantastic(환상적인), Destiny(운명), Freedom(자유), Liberity(해방), Tranquility(평온)순이었다. 듣기 좋은 말보다 의미와 가치를 중심으로 설문을 한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Father(아버지)는 7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어디를 가나 ‘아버지’는 대접을 못 받는다.영구문화원 설문조사에서 ‘어머니’가 가장 아름다운 말로 뽑힌 게 놀랍다. 전통적으로 서양에서는 ‘여성’을 비하해 왔고, 동양에서도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이 만연했는데도 말이다. 여성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변한 결과일 것이다.
2천년간 서양사상의 근간을 이루었던 이리스토텔레스(BC384-322)는 “여성은 어떠한 속성의 결여, 그 결여의 덕분에 여성일 뿐이다. 우리는 여성이라는 성(性)을 자연상태의 결함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니 한술 더 떠서 여성은 오르가즘을 모르기 때문에 남성은 이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보다 900년 뒤에 태어나 중세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또 “여성은 무엇이든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피조물이 아니며, 또 항구성이 없는 존재”라고 하여 여성을 아예 인간으로 취급하기를 거부했다.
아우구스티누스보다 약 670년 후에 태어나 중세 기독교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자를 규정하기를 불완전한 남자(an imperfact man)이라 하여 존재해야 할 필연성이 없는 부차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던가? 사도 바울은 또 뭐라고 했나? “남자는 여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며, 여자야말로 남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고린도전서 11:7-8)라 했고, 이어 34장에서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라고 하더니 35장에서는 가일층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라며 아예 여자는 말도 하지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근대 서양철학을 이끌었던 루소,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등도 더욱 정교하고 교묘한 이론을 펼치면서 여성을 비하했음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니체는 “그대, 여자에게 가는가? 회초리를 잊지 마라”고 충고했다.공자(孔子) 또한 이에 뒤지지 않는다. “여자와 소인은 가까이 하지 마라. 잘 해주면 기어오르고 멀리하면 원망한다”고 했지 않던가. 공자는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3대가 이혼을 했다. 부인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망갔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오직 노자(老子)만이 여성을 천지지근(天地之根-도덕경 6장)이라 하며 세상의 근본으로 하늘처럼 받들었다. 얼마전 전 세계 공적(公的) 지식인 1위에 선정됐던 미국 MIT 노엄촘스키 교수는 “여성은, 특히 빈곤할수록 돌봐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창조적이고 능동적이 된다. 남자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이면 마약이나 알콜 따위에 빠지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살아가기 위해 세상과 맞선다.”며 여성성(女性性)을 위대하게 보았다. 여성이 오늘날처럼 제대로 존중을 받는 데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2천년 5백년이 걸렸다.